돈 못 버는 연예인

현꿈의 글 '열사흘'

by 현꿈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돈 못 버는 연예인



남는 게 힘인데요.

물론 학생이라고 불렸던 시절을 떠올리면 다 비슷하리라 생각되지만 초등학생의 에너지는 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초등학생이란 가장 에너지 넘치던 시기의 우리였던가? 이 시절 나도 그랬던가? 아니면 요즘 아이들이 더 파이팅 넘치는 걸까? 사실 우리 반 아이들이 유독 파이팅 넘치긴 한다. 우리 반 교실은 에너지로 가득 채워지다 못해 이내 넘쳐흐르고 있다. 매 순간 놀라움의 연속으로 학교라는 곳에서 우리 반, 우리 교실이라는 곳에서 함께 부대끼고 싸우고 화해하고 웃으며 우당탕탕 지내고 있다.


우리 반 참 예쁜데 보여주지 못하니 아쉽다 •́︿•̀
손 편지 좋아하는 감성쟁이 선생님이 1학기를 마무리하며


내가 초등 교사?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배우며 그러한 선생님이 되길 꿈꾸었고 어느덧 나는 초등 교사가 되었다. 올해 3월 발령을 받고 새내기 교사가 되어 하루하루를 학생들과 함께 보내다 이제 10월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나 꿈꾸어 온 선생님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고 설렜다. 내 반이라니...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새 학기 준비 기간을 바쁘게 보냈다. 교실이 차츰 채워지고 학생들과 함께할 시간을 준비하며 분주하던 날들이 지나가고 그렇게 3월 2일이 되어 반 학생들을 처음 맞이했다. 앞으로의 교직 생활의 첫 시작을 이 학생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나의 첫 제자라는 생각에 더욱 가슴 벅차고 소중했다.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학생들 중 이 학생들은 아마 교단에서 내려오는 날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지 않을까? 언제나 처음은 뜻깊기에 언제나 넘치는 열정으로 내달릴 준비가 된 상태로 힘차게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과의 티키타카를 즐긴다.

사람들 사이에 잘 맞아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를 ‘티키타카’라고들 한다. 나는 아이들과의 티키타카를 즐긴다. 나의 농담 한마디에 장난 한 마디에 자지러지는 아이들의 반응을 기대한다. 내가 이렇게 딱 말했을 때 반응이 어떨까? 놀랄까? 좋아할까? 장난치는 재미가 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반응이 더 뜨겁다. 죽이 잘 맞아 그런가 이 한 마디에 괜히 분위기만 싸해지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내 한마디에 아이들은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전방 샤우팅! 아주 좋단다. 괜히 말을 꺼내 왁자지껄 교실이 순식간에 여기저기 말들로 가득 차고 모두 한껏 들떴다. 내 목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아주 귀가 따가워 학교에서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내 청력이 무사할까 두렵지만 재밌다. 저렇게 행복해하는데 행복하게 두자 하다 보니 나도 같이 웃고 있다.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살 수 있었을까?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가정에서도 우리 반에게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렇게 열렬한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 제법 즐겁다. 어느덧 내가 아이들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다. 50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보며 반짝이며 나의 다음 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 좀 더 뜸을 들여야지. 한껏 기대를 부풀려놓고 짜잔! 그 뒤 따라오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제법 신난다. 처음엔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이제 나에겐 확실한 행복이다. 참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에겐 연예인

연예인만큼 큰돈을 버는 직업과는 거리가 멀지만 학교 근처 어디를 다녀도 제법 거리가 있는 대형 쇼핑몰에 가도 학급 학생들을 만날 위험(?)이 항상 있다. 학교를 벗어나면 나도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었는데 어디에서도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 사명감이 저 멀리서 달려온다.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 큰 쇼핑몰에서 누가 부른다. ‘설마 나일까? 어디서 많이 듣던...?! 아 우리 반 00이 목소린데?’ 역시나 맞다. 그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저 사람 선생님인가 봐?’ ‘저 애 참 목청 좋다’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저 멀리서 세상 떠나가라 목청껏 부른다. “선생님~~~!!!” 참 반가운 인사, 참 반가운 얼굴인데도 어떨 땐 조금은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아침에 오자마자 “선생님을 어디서 봤다”, “선생님 언니나 동생이 있냐 지나가면서 봤다”, “아침에 등교할 때 봤다”, “어제 집에 갈 때 봤다”라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순간에 저 멀리서 우리 반 아이가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다. 당연히 가족이나 지인과 같이 다니는 것도 조금 신경 쓰게 된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나를 알아봤을까? 매의 눈이다. 저 멀리서 나만 보였단다. 참으로 신기한 재능이다. 연예인만큼 돈을 많이 벌지는 않지만, 연예인만큼 전 국민이 나를 알아보진 않지만 이렇게 나를 보곤 저 멀리서 뛰어오며 반겨주고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니. 그것도 매년 그런 아이들이 생긴다니. 밖에 나갈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창피한 순간들도 있지만 저렇게나 반가워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나름 돈 못 버는 연예인으로 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찾아온 변화

참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교과서 몇 쪽 펴자는 말 한마디도 아이들 귓가에 부딪쳐 나에게 돌아오나 보다. 몇 쪽인지 묻는 말에 하나씩 대답을 해주고 있다 보면 답답했는지 “0쪽! 몇 번 말해! 선생님이 몇 쪽이라고 하셨잖아”라며 대신 대답해 주는 아이들도 있다. 했던 말을 몇 번을 하는지 모를 직업이다. 어려운 활동이라도 하는 날엔 모든 아이 한 명씩 붙잡고 내가 하나씩 해줘야 한다. 색종이를 이 아이 저 아이 25번 똑같이 설명하며 접고 있을 때면 ‘내가 이걸 왜 하자고 했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당연히 목이 쉬고 말할 때마다 목구멍이 따갑다 못해 피 맛이 날 때가 있다. 피 토하는 심정으로 “자 조용~ 빈칸에 써보자 얘들아~”를 몇 번씩 외친다. 극 외향 성격에다 사람 만나고 말하는 재미로 살았던 나는 이제 퇴근 후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말을 아끼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교실에서 방전된 배터리는 교실을 벗어나서는 절전모드가 된다. 퇴근 후 쓰러져 낮잠을 꼭 자야만 한다. 낮잠을 자야 찌뿌둥했던 몸이 풀리고 지끈 아파오던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당연 배터리 충전을 위해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아이들 자는 만큼 일찍 오래 자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순간

모든 학급이 그렇듯 요즘 말하는 ‘금쪽이’가 있어 힘들고 지치기도 한다. 금쪽이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아이들 덕분에 힘을 낸다. 하교 시간 가방을 메고 문을 넘다 돌아와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선생님, 저 오늘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어? 왜? 할 말 있어? 물어볼 거 있어?” “아니요. 선생님 얼굴 더 보고 싶어서요.” 살면서 이렇게 스윗한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예쁜 말을 저렇게 예쁜 표정으로 하다니. 우리 반은 방학식 날에도 방학보다 학교 오는 게 더 좋다며 방학이 아쉽다고 말하는 아이들이다. 그럼 나는 또 못 참고 “어? 너희 오늘 방학식이 선생님 마지막 날인 거 알고 서프라이즈 준비한 거야? 오늘 선생님 마지막 날인 거 어떻게 알았어?”라고 말했지만 내 장난스러운 말에 바로 울어버리는 아이가 있어서 미안해지곤 했다. “선생님 오늘 왜 이렇게 예쁘세요? 오늘은 더 예뻐요”를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이들이라서 부끄럽지만 이런 순간들마다 감동하고 이 순간을 기억했다 되뇐다.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보다 더 큰 활력을 내게 불어넣어 주는 선물 같은 아이들이구나. 역시 내 자리는 이 아이들 곁이구나. 그래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되다가도 오늘도 이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며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학교 현장의 모든 선생님들의 참된 가르침과 학생들을 위한 헌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면서도 많은 난관과 새로운 상황 속에서도 끝없이 노력하신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매일 아침 학생들은 학교로 향하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해 학교는 돌아가고 있다. 이런 노력들로 학교는 학생들의 공간이 되고 교육은 학생 중심의 배움과 성찰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과정에서 나 스스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힘들 때마다 되새긴다. ‘맞아. 내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구나’,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을 선물해 주고 싶다.’ 생각하며 가슴에는 설레는 두근거림과 어깨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매일 아침 학교로 향한다.



아직은 어색한데요?

이렇게 매일매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던 중 스승의 날이 다가왔다. 아직 누군가의 스승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스승의 날이 당황스러웠다. 스승의 날이라니,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을 때, 스승의 날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많은 학생들의 선생님이구나 생각하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는 익숙하지만, 스승이라는 호칭은 어딘가 어색하다. 아직 나는 그렇게는 불려서는 안 될 것만 같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다. 그렇게 불릴 역량도 없거니와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다. 나는 스승이라 부르고 싶은 은혜로운 스승님이 있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불린다면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녀야만 할 것 같다. 지금은 선생님이라 불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나중에 나도 스승이라고 불렸을 때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이 아이들과 보람찬 순간들로 하루를 보내며 2022년을 계속해서 가득 채울 수 있어 행복하다. 감사하다.


글과 학교

요즘 나의 관심사는 온통 글과 학교다. 학교에서 일상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학교 생각을 한다. 아이들 생각을 한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고 그때 왜 그랬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곤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글로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내 삶에도 변화들이 생겼다. 학교생활이 더 보람차고 더 즐겁다.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하다. 힘들었던 일은 글을 쓰며 사라지고 좋았던 일은 글과 함께 내 마음에 남는다. 이따금 힘이 들 때면 교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와 그때의 다짐을 되물으며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다짐한다. 지금 쓴 글도 힘이 들 때 다시 보면 다시 힘을 얻고 새롭게 다짐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선생님이라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좋다. 열과 성의를 다하여 학생들을 대할 것이며 서로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교사로서의 보람, 사명감, 책임감, 말로 표현 못 할 가슴 벅찬 기분을 소중히 간직하며 앞으로의 교직 생활의 페이지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야겠다.

물론 혼자가 아닌 나의 첫 제자들과 함께.




아직은 글쓰기가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 글 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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