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쓰 bs 팬티
흔히 우리는 치사한 경우를 당하면 얼토당토하게 도 “참 치사빤스 하네” 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치사팬티’라고 안 하고 꼭 ‘치사빤스’라고 말한다.
치사하다는 말은 의외로 고풍스럽다.
치사는 한자어다.
부끄러운 일 이란 의미의 명사다.
“치사하기 짝이 없네”가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주로 형용사로 쓰임새가 변형됐다. 남에게 치사하다라고 하면 상대방을 욕하는 의미의 나쁜 표현으로 인식된다.
이 치사하다에는 복잡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 않나 싶다.
“스스로가 치사하다는 표현을 할 상대방은 현재 본인보다 한 수 위다. 그래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싫어도 내색할 수가 없다. 아는 걸 또는 소유하고 있는 걸 상대방이 풀어야 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푼다. 인색하고 더럽다. 그래서 치사한 것이다. “ 빈섬학당 블로그에서 발췌한 표현이다.
근데 왜 뒤에 빤스가 접미어처럼 붙어서 세트로 다닐 까? 일명 ‘치사빤쓰’ !
빤쓰는 팬티에게 비롯된 전형적인 콩글리시다. 물론 일본식 발음이 원조다.
빤스 런닝구는 일본어에서 파생됐지만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 한국동란을 겪으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네 앞선 세대들에겐 역성적으로는 추억의 국민 단어다.
그런데 해방 후 더 나아가 한국전쟁 이후, 빤쓰라는 표현이 서서히 내려지면서 간헐적으로 팬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미군주둔의 영향 때문이다.
아마도 빤쓰가 통용되던 시절의, 즉 어려웠던 시절의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에는 낯 부끄러운 치사함을 슬며서 내려놓고, 팬티로 갈아타면서 팬티를 계기로 교양과 세련을 자처하기 시작한 표현이 태동되었지 않나 싶다.
일종의 자존심 세탁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빈섬학당 블로그 역시 치사빤쓰를 “치사하기가 빤스같은 놈의 준말이지 않을까 싶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치사함 뒤에 자존심을 내려놓기 위한 빤쓰를 붙여서 우리네 힘든 시절의 여러 군상들을 제거하기 위해 치사빤쓰라는 조합어가 등장한 게 아닌가 조심스레 유추해 본다.
여하튼 치사빤스한 행동은 생각해서도 또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경계어 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치가빤쓰 소리 듣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헛되지 않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