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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NY JD Sep 19. 2023

“저건 어느 나라 비행기인가?”

“그럼 항공사는?”, “그렇다면 기종은 뭔가?" 

내가 경험한 이건희전삼성회장은 말 수가 적은 편이다. 아니 거의 말을 안하는 편이다. 그런데 호기심에 관한 한은 ‘왕’이다. 궁금한 것을 당장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이는 재벌총수(오우너)들의 보편적인 성향이지 않나 싶다.


가로수 하면 플라타너스 밖에 모르는 수행비서에게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블루버드(도로 이름)상의 희한한 가로수를 가리키며 저 나무는 이름이 뭐야? 라고 묻는 궁금증 만땅(?) 회장님도 본 적이 있고, 지나가는 신차를 보면서 “저 차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가나, “출시 후 몇 대나 팔렸나?” 를 묻는 오우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다.


이 경우, 대처 방법은 두 가지다. '거짓' 아니면 '진실'! 예를 들면 “ 네 회장님. 출시된 지 3개월 이틀 째로 신문을 보니 23만 3천 3백 33대가 팔렸습니다”라고 허풍쟁이가 있는 반면, “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참모, 이렇게 대충 둘로 대별되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 “ 미처 그 부분까지는 제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빨리 알아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면 백번이고 살아 남는다. 반면에 전자인 거짓말은 오래 못간다.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 질 것들 ... 이경우 오우너들이 하는 단골표현이 있다.“왜 저 친구 아직까지 여기 있지?” 즉 거세 대상 1호가 되고 만다.


러시아와의 국교수립이 이루어 진 것도 삼십년이 후딱 지나갔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에 가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을 최근 화면을 통해 접하면서 다음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는 이건희회장이 대한항공 쌍용그룹 김석원회장의 걸프 스트림 자가용 비행기를 빌려 타고 해외에 가던 시절 이었던 것 같다.(부의 정도로 보면 삼성에서 자가용 제트기는 물론 보잉747까지 전용기로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과 달리 정치권 권력의 눈치를 안 볼래야 볼 수가 없었기에 자가용 제트기의 도입은 아예 금기시 되었던 시절이었지 않나 싶다. 당시에는 자가용 전용기를 소유한 사람은 고조종훈 전대한항공회장, 그리고 김석원전쌍용그룹 회장이었지 않나 싶다.)


자가용 제트기의 경우는 보딩 브릿지(탑승구)에 비행기를 댈 수가 없어서 탑승을 위해서는 주기장까지 이동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당시 대한항공의 활주로내 의전 차량은 마이크로 버스였다. 벤츠 롱 스티치 리무진 같은 럭서리 차량만 타시는 분들에게 마이크로 버스라... 어딘가 품격이 맞지는 않지만, 폐쇄 공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김포공항내 대한항공 귀빈실에 도착, 배웅 나온 회장단과 함께 차를 마시고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이동을 시작한 이회장은 여느 때와 같이 “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나? 자녀는 몇 인가? ” 등을 본인에 대해 몇 가지 물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겨울이라 활주로에 내린 눈이 군데 군데 덜 녹은 상태로 쌓여 있었던 활주로를 지나 가면서 여의때 와는 달리 이회장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데 그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달이 나게 된 단초를 제공한 것은 계류장에 세워져 있던 한번도 보지 못했던 왠 군용기 그것도 수송기 같은 비행기를 이회장이 목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보잉747 기에 버금갈 정도로 큰 비행기였다. 게다가 조종석 부분이 위로 들쳐져 그곳을 통해 화물을 싣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비행기는 마치 초대형 펠리칸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듯 했다. 그 모습을 상상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아니나 다를 까, “저건 무슨 비행기 인가? 아니 어느 나라 비행기인데 저렇게 큰가?

하고 바로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당황한 것은 나도 나지만 , 비서팀장 등 수행원 전원은 더더우기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비서실 직원도 아닌데 질문의 주체로 답을 해야하는 당사자로 호명 당했으니 정말 미치고 팔 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담대함’이란 단어의 사용은 원조를 굳이 찾자면 본인이 아닐 까 싶다.

윤석렬대통령이 대통령 취임후, 북한에 대해 담대한 구상을 언급해 '담대함'이 회자되었지만 당시에는 이 단어의 쓰임아 그닥(그다지) 이었지 않나 싶다,


암튼 담대하게 대처한다가 당시 처한 위기에서의 모토이자 살 길 이었다.


비행기 앞과 머리 부분이 열려 있어서 아무리 봐도 비행기에 대해 기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국기나 나라명, 하다못해 그 나라의 글씨라도 쓰여져 있으면 추론을 해볼 텐데… 비행기앞 부분의 머리가 크게 들어 올려져 젖혀진 탓에, 아무런 표식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이크로 버스는 왜 이리 또 빨리도 주행을 하는지… 비행기를 살펴 볼 순간도 주어지지가 않았다.


버스 안 동승한 그 누구도 이 비행기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동승한 대한항공 공항지점정도 머리를 갸우뚱 거릴 뿐이었다.


일순간, 한쏘(러시아)국교 수립이 떠오른다. 반사적으로 “러시아 비행기 입니다.” 를 외쳐본다.


한 가지 확고히 알고 있었던 것은 “러시아 비행기 인 것 같습니다.”하면 이회장과의 인연은 "바이바이..." 인 지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질러 버리고 말았다. " 무식하면 용감하다 "고, 그냥 "러시아 비행기입니다"하고 질러 버린 것이다.


그러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일단 ‘러시아 비행기!’ 일리가 있다는 이회장의 표정과 함께 일단락이 되는 듯 싶던 찰나, 국적을 묻는 게 권투용어로 ‘잽’ 이었다면 이번에는 “어느 항공사 인가?” 하면서 훅하고 2차 질문이 들어 오고 말았다.


항공사 이름하면 한국 일본 미국 싱가폴 홍콩 항공사 이름만 알고 있을 때, 러시아 항공사 이름을 대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런데 일순간 외신을 접할 때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면서 “ 아에로플로트입니다 ”를 내밷고 말았다.


 “빙고!” 였다. 맞춘 거 였다. 한 숨을 길게 내밷고 있자니. 이번에는 연이어 이회장이 “비행기 기종은 뭔가?” 하며 완전히 ‘어퍼 컷’을 날리는 게 아닌가?


보잉, 에어버스, 걸프 스트림 등이 아는 비행기기 기종으로는 다 였건만...정말 '난감' 그 자체였다.

일순간 일류신이라는 한자로 혼돈되고도 남을 만한 세음절 단어가 하나 떠올랐더.


아에로플로트와 함께 따라 다니던 단어로 러시아 사람들도 한자를 쓰나? 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접했던 기억이 나,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일류신 기종입니다.”, 그리고는 뻥 치는 게 늘었는지 나도 모르게 초대형 페리칸을 연상하면서 “미국에 보잉이, 유럽에 에어버스가 있다면 러시아를 대표하는초대형 기종은 일류신입니다” 라고 오버까지 하고 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런데 다행히도 일류신도 정답이었다.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일류신 이렇게 그날의 세 단어는 평생 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못할 단어가 되버리고 말았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항공사, 기종들의 이름은 지금은 검색엔진에 들어가면 10초이내로 답을 얻을 수 인 것들이지만, 30년전 만 해도 러시아는 구쏘련이라는 이름하에 정말 미지의 나라였던 탓에, 정말이지 그 당시는 무지 그 자체 였다.


설령 알고 싶어서 접근한다손 치더라도, 그 경우라면 아마도 공산국가를 언급한다고 해서 아마도 반공법에 저촉이 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일류신’ 거기다 보태서 ‘펠리칸’ 이란 단어는 나에게 “귀여운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남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귀엽더라도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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