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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Sep 13. 2024

첫날의 풍경

낯섦과 익숙함

 

  누가 봐도 새로 사서 입은 듯한 멋진 코트와 원피스, 그리고 왕 머리핀을 꽂은 공주님 등장. 꼬마 왕자님들은 머리를 왁스로 고정시키거나 특별한 경우 넥타이에 구두를 신기도 한다. 


  자기 몸뚱이만큼 큰 네모난 가방에 귀여운 키링을 잔뜩 달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하얀 실내화를 실내화 주머니에 넣어서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교문을 들어선다. 실내화 주머니는 대부분 새로 산 책가방과 세트이다. 보호자와 함께 입학식장에 들어선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이름표와 축하 선물 등을 나누어 받고, 교장선생님의 축하 인사와 담임 선생님 소개 등을 듣는다. 애국가는 어느 정도 따라 부르지만, 행사의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교가는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이다.


  어리바리하고 귀여운 이 꼬마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한동안 자기 교실의 위치를 몰라 헤매기도 하고, 방과 후에 가야 하는 곳이 돌봄 교실인지 정문인지 후문인지 몰라 학교 안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입학하고 1주일간 방과 후 강사나 돌봄 선생님이 직접 교실로 아이들을 데리러(라고 쓰고 ‘모시러’라고 읽음) 온다. 1학년 선생님들은 대부분 다른 학년을 가르칠 때보다 조금 더 친절하게 많은 것을 안내하고자 애쓰지만, 스무 명 가량의 아이들이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에 점점 목소리가 갈라지고 웃음기를 잃어간다. 그리고 아무리 친절하게 해 주어도 유치원 선생님만큼의 상냥함을 기대했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는 ‘딱딱하고 불친절한’ 1학년 담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평소와 다름없이 시크한 검정 추리닝 차림에 검정 패딩을 입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의 최고 학년이 된 6학년이다. 실내화는 사이즈가 작아져서 새로 샀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작년에 신던 것이다. 실내화 주머니라고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 비닐봉지에 가져오기도 하고, 학교에서 함께 색칠한 에코백이나 조금 질긴 쇼핑백 같은 것에 실내화를 넣어서 ‘담임 쌤은 어떤 분이실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새 교실로 들어선다. 누구와 같은 반이 되었는지는 5학년 종업식 날부터 수집한 데이터로 이미 파악하고 있다. 전교에서 유명한 ‘이상한 애’와 ‘나랑 절교한 적 있는 앙숙’만 없다면 반쯤 성공한 반편성이라며 만족해한다.

  첫날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일 년간의 당부사항을 주로 듣는데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날 되도록 중요한 이야기를 모두 다 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일 년 중 가장 교사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하루이니까.

  ‘6학년 담임은 3월에는 웃지 않는 것이 좋다’는 업계의 정설이 있다. 괜히 첫날부터 히죽거리다가는 “우리 담임쌤 착해.”에서 “만만해.”를 거쳐 “짜증나.”로 넘어가는 시간만 단축될 뿐이다. 나중에라도 교실 기강을 잡고자 큰 소리를 내거나 야단을 친다면 “처음에 착한 척하더니만 이상해졌네.”라는 뒷말을 들을 수도 있다.


  배우는 과목도 많고, 이동해야 하는 특별실도 무척 다양하지만 선생님이 몇 층 무슨 교실로 가라고 처음 한 주만 잘 이야기해 주면 그 뒤로는 알아서 잘 이동한다. 오히려 이 학교에 근무한 지 오래되지 않은 교사가 특별실의 위치를 잘 모르는 것 같으면 먼저 알려주기도 한다.


  한 번은 우쿨렐레를 배우러 처음 음악실에 갔는데, 강사님이 안 계셔서 자물쇠를 열지 못한 적이 있다. “교무실에 가서 비밀번호 좀 알아와.”하며 발 빠른 두 명을 보냈는데, 한 아이가 나무로 된 문을 면밀히 살펴보더니 “여기 비번 있어요!”라고 말해주어 무사히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교실 문 어딘가에 네임펜으로 은밀하게 적혀있는 자물쇠 비밀번호도 찾을 줄 아는 것이 바로 6학년의 매력이다. 아까 출발한 두 명을 더 빠르게 쫓아가서 다시 데리고 온 것도 자기들이 알아서 움직인 결과이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날 나는 6학년 아이들에게 n번째 반해버렸다.




  매일 교문까지 데려다주고 학부모와 아이 컨택 후 아이를 보내주던 나는 ‘최고 학년의 층’인 5층 복도에서 “잘 가~” 인사만 하면 알아서 학원으로 방과 후 교실로 흩어지는 모습에 약간의 해방감을 느낀다. 방과 후 교실이 3시부터라 한 시간가량 혼자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보거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시간 맞춰 다시 해당 교실로 돌아가는 모습에서는 경이로움까지 느껴져 “와! 너 정말 멋지네!”라고 소리 내어 감탄했다.


  열세 살 아이에게는 당연한 것이 불과 6년 전에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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