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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Sep 20. 2024

추구하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파스텔톤 vs 무채색

 

  “엄마, 영어 학원에 못 보던 아이들이 우르르 나타났어. 특히 여자애들은 다 블링블링한 원피스를 입고 있어. 새로 입학한 1학년이겠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아이가 3월에 나에게 해 준 이야기이다.


  여섯 살 때까지만 해도 바지는 ‘예쁘지 않다’며 오로지 원피스에 레깅스만 입어주던 아이가 일곱 살 때 유치원에서 단체티를 나누어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입어야 하는 요일이 생기자 하의로 ‘치렝스(치마와 레깅스의 합성어로 레깅스에 치마가 붙어있는 형태)’만을 고집했다. 오로지 핑크와 노랑만 입던 아이가 그나마 ‘파랑’의 예쁨에 눈을 뜬 건 유치원에서 ‘파랑반’ 소속이고 단체티가 파란색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컬러데이’가 있어서 마지못해 파란 원피스를 입기는 했지만 “다섯 살 동생반은 분홍반과 노랑반이 있더라. 나도 분홍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못내 아쉬워했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일 고무줄 바지만 찾는 실용적인 취향의 평범한 어린이가 되었다.




  앞서 말한 ‘예비 초등생’의 취향을 반영해서 입학 시즌의 백화점에는 블링블링한 책가방들이 넘쳐난다. 스팽글의 반짝임은 기본이고 무지갯빛 유니콘 키링에 거대한 토끼 인형 같은 것들도 주렁주렁 달려있다. 남자아이들은 조금 덜하긴 해도 공룡이나 로봇, 자동차 등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번쩍이는 가방이 주류이다. 가방은 십만 원이 훌쩍 넘고, 세트로 된 신발주머니까지 합하면 이십여 만원에 육박한다. 그러한 가방을 사주는 부모도, 판매하는 직원도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이 가방의 사용 기한은 길어야 일 년이라는 것을. 1학년이나 좋아할 만한 유치한 디자인의 가방은 무겁고 화려하고 딱 일 년만 사용하는 물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꼭 팔려야만 하는 상품이고 선물하기에 딱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당사자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는 아직도 핑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주님들과 ‘이제 핑크는 조금 유치해’라고 생각하는 연보라색 원피스의 소녀들, 민트색이라는 새로운 컬러에 눈을 뜬 부츠컷(나팔) 바지파가 적당히 섞여 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여전히 엄마가 아침에 곱게 땋아주거나 각종 장식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준다. 부모님의 꼬임에 넘어가 단발머리가 되었다면 머리띠로라도 아쉬움을 달랜다. 조막 만한 얼굴보다 더 큰 커다란 인형과 왕리본이 달려있어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그 나이대에만 볼 수 있는 귀여운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상대적으로 의상이 수수한 남자아이들은 파랑 초록 빨강 등 원색의 스포티한 모습이 많다. 학기 초에는 입학식 때 입었던 면바지와 셔츠로 멋을 부리기도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축구 유니폼이나 태권도 추리닝처럼 편하고 실용적인 패션이 주류를 이룬다.    




  6학년은 개학 첫날부터 쭉 검은색 옷이 압도적으로 많다. 겨울철 패딩은 비싸고 겨울 내내 입는 것이니 당연히 블랙. 그에 어울리게 추리닝 바지도 때 안타는 블랙. 블랙 다음으로 선호하는 색은 멜란지 그레이색인데, 블랙과 함께 입었을 때 가장 무난하게 잘 어울리기도 한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사정은 조금 나아진다. 블랙이나 그레이와 잘 어울리는 흰 티셔츠도 있고, 겨울보다 훨씬 다양한 색상의 여름 티셔츠를 입고 와서 얼굴도 조금은 화사해 보인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에는 잘 알지 못하다가 사진에 찍힌 본인들의 모습을 보면 약간의 문제점을 느끼는 듯하다. 얼마 전 학교 행사로 중앙현관에 사진 찍는 기계를 빌려다 놓고 ‘인생 네 컷’을 찍는 날이 있었다. 평소처럼 올 블랙이나 회색으로 입고 온 아이들의 사진과 화사한 옷을 입고 온 아이들의 사진이 한눈에 비교가 되었다. “우와! 얘네 모둠은 되게 잘 나왔다. 왜지?” 하길래 “1모둠이 밝은 옷을 입고 와서 그런 거야” 하고 말해주니 새삼스럽게 놀라며 후회의 탄성을 질러댔다.

 “아~ 우리도 이럴 줄 알았으면 밝은 옷 입고 올 걸!”


  옷은 모두 어두운 무채색 계열에 머리에는 검은 고무줄 외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는 아이들.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거나 앞머리로 이마를 가려버리고, 남자아이들은 눈썹이 드러나지 않는 길이의 앞머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겨 조금만 머리를 짧게 깎아도 엄청 못생겨졌다고 생각하며 모자를 쓰고 온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튀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지난 5년간의 경험으로 알아버린 무채색의 아이들.

겉모습은 그렇지만,
쉬는 시간에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그 해맑음과 유치함은 무지개 빛깔의 1학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금방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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