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쓰홀릭 Sep 27. 2024

쉬는 시간(1)

교사는 쉴 수 없는 시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초등생 학부모’라면 입학 전에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10 계명 같은 것이 있다. 


  젓가락질, 화장실에서 용변 보고 뒤처리하기, 200ml 우유 뜯어서 마시기, 물병 스스로 열고 닫기, 작은 빗자루로 하는 빗자루질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중에는 ‘40분 간 자리에 앉는 연습하기’라는 것도 있는데 만 6세가 된 아이들에게 딱딱한 의자에 앉아 40분을 버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연습하기는 하지만 학교는 이전에 다니던 기관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후 처음 한 달 정도는 ‘공부’보다는 ‘생활 습관’ 잡기에 집중한다. 사물함과 서랍, 칠판과 화면, 바구니에 항상 넣어두어야 하는 물건과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가방을 거는 위치, 책상 서랍 속에 교과서와 필통과 바구니를 적절하게 놓는 방법, 사물함을 열고 닫을 때 주변 친구들이 다치지 않게 위치를 확인하는 습관 등 이때 반복적으로 익혀야 하는 행동 요령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매일 쏟아져 나오듯 생산되는 학습지며 미술 결과물을 A4클리어 파일에 넣는 것부터도 1학년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시간이나 공들여 만든 작품이지만 자기 이름을 쓰지 않으면 몇 주 뒤 나누어 줄 때 큰 혼란이 생긴다. “이건 제 것이 아닌데요.” “제 작품이 없어졌어요!”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나는 작품이지만 애착이 있었던 모양인지 자기 작품이 없어져 버렸다며 울어버리기도 한다.      




  학교마다 시스템이 다른데, 지난 근무지에서는 수업종이 울리지 않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이들이 종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비교육적이라나 뭐라나.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는 학년별로 교문을 드나드는 시간대를 다르게 하기 위해 (그곳은 한 학년이 열 반에 육박하는 굉장한 과밀학교였다) 하루 시정표도 저/중/고가 달랐었다. 그렇기에 종소리가 울리면 더 큰 혼란이 생긴다는 것도 수업종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였다.


  매번 시계를 보며 쫓기듯 수업하고, 쉬는 시간에 맞춰 “지금부터 10분간 쉬는 시간입니다.”라고 말하면 뭐 하나? 1학년은 10분이 얼마만큼 짧은 시간인지, 그래서 2교시가 시작되는 오전 9시 50분에는 시곗바늘이 어디에 가는지도 모른다. 1학년 선생님은  “자, 시계를 보세요. 지금 긴 바늘이 8에 있지요? 그 긴 바늘이 10에 가면 쉬는 시간이 끝나는 거예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심지어 매시간 긴 바늘의 위치가 다르기까지 하니 선생님도 헷갈릴 지경이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음 시간 준비도 하고 아까 어질러 놓은 교과서 정리도 하고 더러는 우유도 마셔야 하는 ‘쉬는’ 시간인데, 할 일은 젖혀두고 일단 뛰어다니며 ‘노는’ 시간을 보내기에 바쁜 1학년.


  다음 시간을 시작해야 한다고 소리치지 않고 내버려 두면, 한 시간 내내 의심도 없이 신나게 놀 수 있을 분위기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화면에 10분 타이머를 띄워놓기도 하고, 교탁 위에 놓인 황금빛 종을 스스로 “땡땡땡”하고 치기도 하며 학기 초 훈련에 공을 들인다.


  저학년 담임이 피곤한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선생님 주변으로 몰려들어 책상 위의 신기한 물건을 탐구하며 “이건 뭐예요? 와 예쁘다. 이거 저 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 귀걸이 예뻐요.” “선생님, 어제 누구 생일이었게요? (정답은 할머니)” 하고 쉴 새 없이 관심을 표하고 또 갈구하기 때문에 정작 선생님은 화장실 갈 시간이 없다. 저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하교하고 난 뒤 선생님의 호주머니에는 돌돌 말린 두루마리 휴지가 두어 묶음 만져진다.

  첫 번째 쉬는 시간에는 - 화장실 가려다가 - 누가 넘어져서 다치고, 그다음에는 - 화장실 가려다가 - 누가 싸워서 울고... 다양한 사건 사고에 휘말려 화장실 가기에 실패한 횟수만큼의 휴지 뭉치인 것이다. 어쩌다 운 좋게 화장실에 가더라도 문 너머까지 쫓아와 각종 민원을 넣는 어린이 고객님들 때문에 마음 편히 나만의 과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령 없던 저경력 시절에는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왜 화장실을 제 때 못 가셨어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대답했다. “자꾸 타이밍을 놓쳤어요."

  참고로 방광염은 하지정맥류, 성대결절 등과 함께 교사들의 대표적인 직업병 중 하나이다.     

  



  수업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을 울려주는 학교에서는 비교적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기가 쉽다. 아침에 미리 그 날치 교과서를 서랍에 챙겨두는 것, 쉬는 시간에는 다음 시간 준비부터 하고 일어나는 것, 쉬가 마렵지 않아도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오는 것 등을 학기 초에 신신당부하고 반복적으로 잔소리하지만 6학년이나 되어도 여전히 한 두 명은 수업 중에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이라고 말하곤 한다. 가끔은 수업 도입이 한참 지나서야 교과서를 가지러 사물함 쪽에 다녀오기도 한다. 1학년과의 차이점이라면 조금은 미안한 분위기와 부끄러운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 수업이 다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종이 칠 경우 눈치껏 의자에 조금 더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6학년 아이들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쩌다 한 명 정도가 종소리와 동시에 자리에서 튀어 나갔다면 친구들이 먼저 “야, 눈치 챙겨.”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다음 편에 계속]


이전 03화 추구하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