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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Oct 04. 2024

쉬는 시간(2)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배우는 과목 수가 많아지고 학습 내용도 깊어진다.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생활 지도가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다른 학년 보다 6학년에 교과전담의 비율을 늘려주어 담임의 교과 지도 부담을 줄여주고자 한다.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모두 다 담임이 가르친다는 단점과 일찍 하교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5~6학년이 되면 몇몇 과목을 다른 선생님에게 전담하게끔 함으로써 담임의 수업 시수가 줄어든다는 장점과 거의 매일 6교시를 꽉 채워 하교한다는 단점이 있다는 말이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근무지는 학생수가 많이 줄어 여유 교실이 많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은 영어, 과학, 사회, 음악 시간에 해당 선생님들이 계시는 특별실로 줄 서서 이동한다. 자연스럽게 10분의 쉬는 시간 안에서 ‘이동시간’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종 치기 3분 전에는 출발하는 것을 약속으로 정했다.




  3~4월 내내 큰 소리로 “얘들아, OO책 챙겨서 줄 서자. (줄이 좀 모이면) 출발~”이라는 말을 하던 나는 5월부터 ‘다음 시간 알리미’를 일인일역으로 정해서 배정해 주었다.

  * 아쉽게도 그 역할을 맡은 아이가 매번 마음에 들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일인일역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교사가 매번 그 역할이 누구인지 찾아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잔소리를 하다 보면 나 혼자 ‘1인 20역’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5월의 어느 멋진 날, 연구실에 잠시 모여 긴급회의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나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우리 반 아이들을 음악실로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교실로 뛰어갔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알아서 음악실로 모두 이동한 뒤였고 빈 교실의 적막만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게 바로 고학년의 맛이구나 하는 것을 무척 강렬하게 느꼈던 아름다운 기억이다.     




  쉬는 시간에 느낄 수 있는 1학년과 6학년의 차이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교사와 아이들의 사이의 - 심리적·물리적 - 거리’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1학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주로 선생님 책상 주변에 모여 소란스러운 구름 떼를 형성하는데 6학년은 정반대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을 만큼 먼 거리로 이동해서 자기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얼마나 멀어지고 싶은 건지 교실 밖으로 흘러나가 복도나 계단, 화장실에서 몰려다니며 놀다가 선생님이 다가가면 비밀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흩어진다.

교실 밖에서 발견되는 술래잡기파


  남학생들은 여전히 쫓고 쫓기며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문을 부수거나 서로 다치게 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지만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문구류를 가지고 노는 경우가 많다.

삼삼오오 수다파


  어쨌거나 쉬는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 여러 번 이야기하지 않아도 적당한 때에 자리로 돌아와 앉기 때문에 저학년 담임을 할 때보다 소소한 피로감은 적은 편이다.

 

  정말로 몰라서 하는 실수와 아는데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실수의 차이로 인해 ‘괘씸함’이 증가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1학년은 정말로 손에 힘이 없어서 우유를 뜯다가 흘리고, 뱃고래가 작아서 한 번에 200ml를 다 못 마시기도 한다. 먹던 우유를 책상에 두었다가 쏟는 일이 1학년 교실에서는 비일비재하지만 애잔한 마음도 들기에 야단치기는 애매한 면이 있다. 


  6학년은 똑같은 사고를 쳐도 그 메커니즘이 다르다. 우유를 -결코 힘이 없어서가 아닌- 대충 뜯다가 흘리는 부주의함,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책상에 두었다가 쏟아지게 만드는 안일함, 그냥 깜박하고 안 먹었는데 뒤늦게 먹기 싫어져서 배 아프다고 둘러대는 뻔뻔함 등이 그 원인인 것이다.


  6학년은 사실 우유를 쏟아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휴지를 뜯어와서 자기가 쏟은 우유를 닦고, 폭풍 같은 잔소리에 크게 상처받지 않기 때문에 뒤끝이 없다는 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장점이다.



  “쉬는 시간 언제 와요?”

  이는 1학년 아이들이 수시로 하는 질문임과 동시에 6학년 아이들이 슬그머니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속으로 궁금해하는 소리 없는 외침이기도 하다.


  나이 불문, 국경 초월, 피부색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시간이자 기다려지는 시간은 바로
“쉬는 시간“ 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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