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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Aug 21. 2023

털 없는 원숭이와 삶의 목표를 시작하며

머리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누구나 해봤을 이 질문에 조금 더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 질문을 해결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목표였다.

대학교에서 이 답을 찾고자 군대를 포함해 8년간 학교를 다녔고 마지막 학기까지 학점을 꽉꽉 채워 들었다.

잘 다니던 직장생활을 관뒀다.

이제는 미운 정이 든 것일까 평생 동안 날 괴롭혀 왔던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공부하는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오히려 답을 찾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좋은 삶의 목표를 찾아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신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삶에 확신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했던 경험은 실패라는 결과가 되어도 미래에 대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삶의 목표를 이뤘다면 죽는 마지막 그 순간에 좋은 삶을 살았다고 평가하며 세상을 뜰 것이다.

살아갈 때, 그리고 삶의 전체를 평가하는 죽음의 순간에 내가 잘 살았다고 느끼는 것만큼이나 우리 인간에게 좋은 일이 있을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인간이 그 불안을 떨쳐내고자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목표를 만들고 삶을 예측한 목표에 끼워 넣고자 발버둥 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성적이고 거대한 불안을 대비할 수 있다.

이런 혜택이 있는데 사람들은 왜 어떻게 살아갈지 더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사실 이러한 필요성을 주장하고 아주 긴 시간 삶의 목표를 찾고자 매달린 나조차 속 시원한 답을 찾진 못했다. 

공부하거나 주변의 말과 삶을 참고할수록 고민만 늘어났다.

아마 많은 이들 역시 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 봤고 때문에 어떻게 살아갈지 더 고민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포기 혹은 타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홀가분하게 삶을 사는 것만 같았다.

지만 그들에 비해서 매몰된 시간과 노력이 많아서일까?

삶의 답을 못 찾았다는 사실이 정기적으로 떠올랐고 그때마다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 쌓여만 갔다. 

점점 커지는 불안을 해소하고자 결국 이 문제에 매달렸고 그 시간에 비례해 내 삶은 조금씩 다른 이들과 달라져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뒤처지는 내 삶이 망해버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불안함에는 조급함이 더해졌고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점점 무력해져 갔다.

마음의 무력감이 신체적인 무기력함으로 이어져 하루종일 졸거나 생기 없이 지냈던 끔찍한 경험도 했다.    


물론 그 긴 시간 답을 찾고자 매달린 만큼 아무런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목표 혹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 삶의 목표라는 애매한 표현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나름의 답을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삶의 목표에 관한 고민은 결국 잘 살기 위한 고민에서 나왔다는 결론을 내렸고 한편 지금까지와 같이 잘 사는 것에 관한 주관적인 논쟁을 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 삶의 목표라는 것에 명확한 답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잘 사는 것’에 대한 해석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행복, 진리, 신, 봉사 등 여러 사람들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각자의 그럴듯한 논리를 가지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는 너무나도 주관적이다.

주관적인 가치를 일반화하기 위해서 수많은 부가 설명이 생기고 삶의 목표를 찾는 길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몇몇은 애초에 무엇을 위해서 이러한 여정을 하고 있었는 지를 잊어버린 것만 같다.

다양한 가치를 고민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원래의 의도나 최종 목적을 잊고 이 가치를 공부하는데만 주어진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함정을 피하고자 '잘 사는 것' 혹은 '좋은 삶'은 아주 담백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각각의 주관적인 주장, 이성적인 지식의 탑을 무너뜨리고 가장 본질적인 부분만을 다뤄야 한다.

그 모든 게 무너지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솔직 담백한 공통점은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잘 사는 것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생존과 번영을 향한 우리의 경향을 과학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을 하나의 동물로 보고 삶의 목표를 보다 담백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 있다.

삶의 목표에 대해서 공부하고 고민했던 긴 시간을 통해서 이런 시선을 갖게 되었고 결국 가장 우월한 하나의 가치를 찾아 삶의 목표로 가져가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간이란 동물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고민하다 보면 금방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가장 우월한 가치를 부정하고 본능과 과학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나 자신이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특별함이 내 삶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반대로 가장 우월한 가치를 찾으며 본능과 과학을 부정하는 일은 다시 답 없는 고민에 빠지는 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삶의 의미 따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려 보니 살아갈 의미를 잃었단 생각에 한동안 우울함에 빠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자신 있게 따를 만한 삶의 목표를 찾지 못했다.


긴 기간의 발버둥 침이 무색하게 답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점점 무기력해졌다.

무기력함은 불안이라는 감정 외에 다른 감정이나 행동을 잘 허락하지 않았다.

불안해서 기분은 나쁜데 힘이 없어서 그 기분 나쁨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마치 늪에 누운 것처럼 그대로 새까맣고 찐득한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대로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 몰린 내 모습을 돌아보니 더 확실해지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끔찍한 기분을 느끼고 있음에도 나는 분명 살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더 잘살고 싶었다.

이 어려움에 지지 않고 삶의 목표를 찾아 생명력 있게 요동치고 싶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잘 살 방법을 찾아서 자신 있게 나만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

결국 지금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연히 낙관적인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준비해야 할 것이 수많은 20대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또 감히 최종 학력이 학사인 20대가 삶의 목표에 관한 과학적인 글을 쓴다는 지적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백수, 오만하거나 무식한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느껴질 수치심에 관한 공포보다 살아갈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고 살아갈 힘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을 찾고자 삶의 목표에 대한 답을 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존과 번영을 향한 마음, 인간에 관한 과학 그리고 삶의 목표를 연결 지어 그 답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이어나갈 것이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만큼, 우선 이전의 방법이 정말 치명적인 한계를 갖는지를 검토해 볼 것이다.

과거에 삶의 목표로서 추구했던 성공, 평범한 삶, 행복, 진리 등의 목표를 다시 돌아보며 해당 시도가 실패한 이유를 찾을 것이다.

한편 이전의 시도를 돌아보며 특정 삶의 목표를 만들도록 이끄는 다양한 동기, 마음의 끌림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나온다면, 그럼에도 삶의 목표가 여전히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새로운 접근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지를 고민해 볼 것이다.

새로운 접근 방식이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해당 방식을 더욱 구체화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방식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결국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잘 사는 방법이란 무엇인지, 그 답을 찾아볼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온 뒤에는 내가 혹은 글을 읽으며 같이 해준 이들이 나만의 삶의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믿고 추구할 자신감이 생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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