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 Nov 12. 2024

자유 의지는 없는데 의식은 있다.

의식에 관한 오해

 삶의 마지막의 순간에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지 않고,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솔로몬 왕도 해내지 못한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 삶을 만족으로 채우고 후회와 허무함을 몰아낼 여러 가지 목표를 좇았었다. 성공, 평범한 삶, 행복 등을 좇았으나 막상 어떠한 멋진 목표도 생각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했고 예상치 못한 후회를 남겼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 삶을 최대한 만족으로 채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측 밖에서 나타나는 장애물, 변수를 통제할 능력이었다.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시간과 여러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진리와 같은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더 나은 삶을 향하는 여정, 논리를 이끄는 우리의 의식(지성, 자유의지, 이성)은 결국 삶의 목표로서 진리를 추구하라고 한다. 그런데, 똑똑한 현대인인 우리는 불확실성을 완벽히 통제해 매번 원하는 미래를 마주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진리를 삶의 목표로서 좇으면 삶이 만족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의식의 비합리적인 추측은 어느 정도 필연적이다. 통념과 달리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의식은 늘 합리적으로 더 나은 답을 찾는 존재라기 보단,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을 통제해 낼 수 있다고 믿는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그 결과, 그 어떠한 전략과 목표도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고 미래를 통제할 달콤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의식되는 여러 정보가 머물고 가공되는 공간, 이성, 지성, 자유의지로도 불리는 의식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삶의 의미나 목표를 좇는 데 있어서 의식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일까?     


 우선 앞으로 할 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가설의 영역이며 또 여러 가설 중 하나만을 중점적으로 채택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이 글의 최종적인 목표는 불확실성과 끝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살아갈 이유 혹은 힘을 찾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 방법을 찾는 주체인 의식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식이 기능과 한계를 어느 정도는 특정 지을 수 있어야 의식이 만들어낼 살아갈 이유를 신뢰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연구는 의식에 관해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이 글에서는 그 가능성의 범위를 의식이 만들어낼 논리의 신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좁혀 놓았다. 그것을 유념하면서 글을 읽으시면 글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모호한 이성, 지성, 자유의지, 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의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해 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의식에 관한 기존의 편견을 모두 허물고 처음부터 새롭게 의식에 관한 정보를 쌓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의식은 우리 생각보다 한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주로 일정 이상의 가치를 가진 정보를 조합해 새로운 정보를 유추해야 하는, 일종의 데이터 분석가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상황에서 의사결정에 관한 의견을 내는 기능으로서 모든 상황에서 우리 모든 정신활동과 행동을 통제한다는 우리 편견과는 거리가 있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실제 의식은 진리를 추측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능을 갖고 있다. 즉 의식이 외부 간섭을 막고 모든 정신활동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지는 않기에 우리 의식(이성)이 가장 합리적인 논리를 만들어 모든 불확실성을 통제할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추측은 틀렸다. 게다가 의식이 주로 받는 정보의 종류는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의식은 비합리적이고 섣부른 인과관계에 관한 정보를 받고 실제 통제하는 것 이상의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정보를 받기 때문에,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통제에 관한 비합리적인 추론을 만들어 모든 불확실성을 통제할 대상을 상상해 냈을 가능성이 크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내부의 일에 관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한다. 배의 꼬르륵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편두통이 왜 생겼는지, 갑자기 단 음식에 관한 갈망이 왜 생겼는지, 멀쩡히 잘만 하던 농구가 오늘은 왜 특별히 재미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머리에, 정확히는 의식이라는 공간에 늘 정보가 활발히 오고 가고 있어서, 의식을 마치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절대자인 것처럼 생각해 왔지만, 사실 의식은 보통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신체 외부 정보만을 주로 다룬다. 사실 의식은 우리 내부의 일에 아주 제한적으로만 관여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잘 알려진, 벤자민 리벳의 1980년도 연구는 이러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우리는 의식이 정신활동(뇌 활성화)을 포함한, 신체 내부의 모든 활동을 통제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어떤 행동을 하고자 의식이 의지를 갖게 되면, 그 의지의 영향으로 운동 관련 뇌 부위가 활성화되고, 해당 뇌 부위로부터 운동 명령이 만들어지고 그 명령이 특정 신체 부위까지 전달되어 행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벤자민 리벳은 이러한 통념을 연구하고자 의식이 의지를 인지하는 순간, 뇌가 활성화하는 순간, 행동이 이뤄지는 순간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 통념은 틀렸다. 먼저 뇌가 활성화되고 그 이후에 의지가 인지되고 행동이 이루어졌다. 해당 연구에서는 의식이 인지한 의지가 뇌의 활성화나 행동을 통제했다는 근거가 되지 못했다.     


 물론 해당 연구 결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후속 연구를 참고하며 만들 수 있는, 비교적 확실한 해석 중 하나는 의식이 인지한 의지가 매번 의식이 정신활동 혹은 행동에 통제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에는 자주 행동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의도(의지)가 전달되거나 행동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대리감)이 전달된다. 우리 의식은 그러한 감각을 자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의식은 자신이보다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은 행동도 자신이 통제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심리학자 wegner는 이와 같이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우리가 인지한 외부 사건에 대한 원인을 의식적인 생각으로 둔다는 apparent mental causation 이론을 제안했다(1999). wegner의 이론에 의하면 의식이 실제로 행동의 원인이 아니어도 의도를 먼저 느끼고, 행동이 의도와 일치하고, 다른 이유가 없으면 우리는 의식과 행동에 대한 인과관계를 만든다. 즉 의도에 대한 느낌, 이뤄진 행동에 대한 감각 정보만 있어도 의식은 자신이 생각과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느낌, 대리감을 경험하게 된다.


 심리학자 frith는 운동 제어 과정에서 운동 결과에 관한 예측정보가 만들어지면서 대리감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2000, 2005). 그는 Comparator model 이론을 통해 대리감이 의식 밖의 운동 제어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해당 이론에 의하면, 성공적으로 움직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표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운동 명령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운동 명령의 복사본이 예측자(포워드 모델)에 전달되어 시뮬레이션되어야 한다. 그렇게 명령의 시뮬레이션이 만들어져야, 시뮬레이션 결과를 가장 처음 만들어진 목표와 비교하며 운동 명령 수정과 관련된 판단을 할 수 있고 또 시뮬레이션 결과의 감각 정보와 운동이 이루어졌을 때의 감각 정보를 비교하며 운동 성공 여부를 바로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를 잡는다는 행동을 할 때, 미리 손위에 놓인 사과의 촉각 정보, 사과를 잡고 있는 손에 관한 시각 정보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과를 잡자마자 의도한 행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frith는 시뮬레이션 감각 정보와 실제 감각 정보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그 둘이 일치할 때, 대리감이라는 정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우리 의식은 너무나 쉽게 우리가 의식 밖 신체나 물질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의지가 실존한다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대리감은 실제로 의식이 신체를 통제하지 않아도 운동 예측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의도에 대한 느낌과 감각 정보만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한다.      


 의식의 관여가 있어야 정신 활동과 행동의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리의 통념을 반박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바로 통제와 관련된 다양한 정신병이다. frith가 연구했던 일부 조현병 환자들은 행동과 의식을 이어주는 대리감을 일반적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느끼지 못했다(2000). 그 결과 자신이 하는 몇몇 행동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의지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통념대로라면 의식이 통제권을 잃는 순간 정신과 행동은 멈춰야 한다. 즉 대리감의 상실은 곧 마비로 이어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frith가 연구한 환자들을 보면 대리감은 단지 의식이 통제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었을 뿐, 실제로 행동을 통제하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사실 세포 뭉치는 흔히 의식의 통제 없이도 자신이 맡은 바를 잘 해낸다. 우리는 소화기관, 순환기관 등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통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해당 기관은 의식의 관여 없이도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기능한다. 뇌 안에 있는 세포 뭉치도 예외는 아니다. 의식의 관여 없이도 수많은 판단이 빠르게 이루어지는데, 심지어 학습도 잘만 이루어진다. 심리학에서 의식이 관여하지 않는 학습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완전히 새로운 규칙을 가진 과제를 반복해서 진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카드를 연구자가 4등분 하고 피험자에게 그중 하나의 뭉치를 고르도록 한다. 그리고 고른 카드 뭉치에서 맨 윗장을 뒤집어서 서로 확인한 후, 연구자만 아는 규칙을 따라 피험자에게 보상을 주거나 처벌을 준다. 예를 들어, 스페이드나 클로버면 그 숫자만큼의 보상을 주고 하트나 다이아몬드면 그 숫자만큼의 보상을 앗아간다. 규칙을 안 가르쳐 준 상태로 이러한 게임을 반복하다 보면, 특정 시도 이후부터 피험자는 높은 숫자의 스페이드나 클로버 카드는 많고 하트나 다이아몬드 카드는 적은 카드 뭉치를 높은 확률로 고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 카드 뭉치를 골랐는지, 이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는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즉 해당 연구는 의식의 개입 없이도 경험한 정보가 처리돼 행동이 변하는 암묵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뇌 안의 있는 세포뭉치의 일부는 분명 의식과 굳이 소통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자신이 맡은 바를 잘 해낸다. 즉 굳이 의식이 관여하지 않는 부분을 이상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의식 밖에 있는 여러 세포 뭉치 역시 의식과 그 최종 목표가 같은, 모두가 나의 일부이다.     


 의식이 그 어떠한 정신활동과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의식이 여전히 특정한 역할을 하며 그때는 정신활동과 행동을 통제한다는 추측을 지지하는 연구를 이어서 소개할 것이다. 다만 의식이 늘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얘기이다. 정리하자면, 의식은 늘 정보를 받고 활성화되어 있으며, 대리감과 의도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의식은 어쩌면 늘 활성화되어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만 외부 환경에 영향을 주는 방범 카메라와 비슷한 존재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에 자신이 확실한 영향을 준다고 믿어야 원활히 기능을 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 부서, 회계 부서와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식의 기능에 관한 오해가 만들어지는데 큰 기여를 한 존재 중 하나는 대리감이다. 하지만 frith가 연구한 환자들을 봤을 때, 우리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처럼, 대리감을 통해 의식이 대부분의 활동에 관여한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정신활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대리감은 나름의 기여를 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우선 대리감은 정신활동과 환경 통제, 행동 통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뇌 입장에선 우선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신체부터 원활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frith 또한 대리감이 운동 통제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모든 세포를 전능하게 꿰뚫어 볼 제주를 가진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더 이상하다. 통제 성공의 판단 근거가 될 대리감 역시, 모든 세포를 꿰뚫어 보며 만들어지는 정보가 아니라 특정 기능을 하는 세포 뭉치의 분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처럼 매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대리감을 통해 우리 뇌는 환경을 통제하기 위한 협력자로서 자신의 신체 혹은 자신과 밀접하게 소통하지 않은 다른 뇌 세포 뭉치를 굳이 의심하고 검증하지 않는다. 그 소모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환경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데에만 몰두할 수 있다.


 Haggard, P는 대리감이 사회적인 기능을 한다고도 추측했다(2009). 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 해당 타인의 의식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곤 한다. 뭉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회적인 동물은 자신과 같은 편이 누군지 파악하고자 타인이 한 행동과 생각을 해당 타인에 평가에 반영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또 더 나아가 분업을 진행하며, 그 결과물을 나누기 위에서 각 분업과 그 책임자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자신의 의식이 개입했든 말든, 자신이 그 행동의 원인이라는 대리감을 느끼고 그 책임을 적극적으로 느끼며 보다 사회 친화적인 행동을 한 개체가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한 조상의 특징이 유전되어, 의식은 엄밀히 따지자면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행동도 자신이 통제했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의식이 모든 활동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고, 그럼에도 그러한 오해가 생산되는데 기여하는 대리감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의식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 의식의 역할을 알기 위해서는 의식이 주로 처리하는 정보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선 의식에는 주로 일정 이상의 양을 가진 정보가 올라온다. 일정 이상의 크기의 청각 정보, 일정 이상의 빛이 반사된 시각 정보만이 의식된다. 혹은 굳이 집중하고 바라본 무언가만이 더 많은 양의 정보와 함께 의식된다. 앞선 예시로든 암묵적인 학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드 뭉치 고르기를 더 많이 반복을 하면, 결국 어떤 뭉치가 더 나은 뭉치인지 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반복된 경험으로 정보가 일정 이상으로 쌓이면 그때부터 의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내용을 가진 특정 대상에 관한 정보가 주로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일까?     


 Persaud, N., McLeod, P., & Cowey, A. (2007)의 연구를 통해 그 용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해당 실험에서 연구팀은 의식의 기능을 더 명확히 구분해 보고자 무의식적인 카드 뭉치 선택 능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의식에만 영향을 주는 요소를 찾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피험자는 카드 뭉치 선택 후 자신의 선택을 가지고 내기를 진행했다. 10달러나 20달러를 걸게 했고 돈을 건 뒤에는 고른 카드 뭉치에서 가장 윗 장을 뒤집어 나온 카드에 따라서 돈을 주거나 뺐었다. 즉 연구자는 피험자가 카드 게임 규칙을 의식적으로 깨닫기 시작한 이후에는 높은 확률로 자신에게 유리한 카드가 나왔을 때는 20달러를 걸고, 자신에게 불리한 카드가 나오면 10달러를 걸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의식적인 내기에 영향을 주기 위해 특정 그룹에서는 10번의 카드 선택 시행마다 각 카드 뭉치의 수익이나 손실에 대한 –10부터 10까지의 양적인 평가를 진행했고 이후에 선택하고 싶은 카드 뭉치를 골라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결과, 질문을 받은 그룹은 질문을 받지 않은 그룹과 비슷한 시행 횟수에서 긍정적인 카드 뭉치를 고르기 시작했다. 즉 10번째 시행마다 한 질문은 무의식적인 카드 뭉치 선택 학습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그룹만이 무의식적으로 이득이 되는 카드 뭉치를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기 성공률도 개선되었다. 이는 해당 그룹이 받은 질문이 암묵적인(무의식적인) 학습을 담당하는 의식 밖 요소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의식만은 자극해서 내기를 개선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Persaud, N., McLeod, P., & Cowey, A. 의 연구 결과를 통해서 의식의 기능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해당 연구에서 의식은 내기에 관여하는 것처럼 보였고 내기에 관여하기 위해 보다 큰 크기의 정보를 주로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의식은 더 큰(양이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일, 특히 내기와 같이 보상과 위험에 관한 정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에 주로 관여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암묵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는데 굳이 의식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살다 보면 적은 양의 경험, 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느슨한 추론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많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큰 위험에 처하거나 반대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더 중요한 선택의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의식은 아마 그와 비슷한 순간 더 눈에 띄는 정보를 모으고 계산해 신중한 선택을 위한 의견을 만드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즉 굳이 비유하자면 의식은 데이터 분석가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정리해 보자. 우리가 우리 내부 운영과 관련된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경험적인 근거와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의식이 매번 모든 활동에 관여할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은 틀렸다. 의식은 주로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정보와 대리감 혹은 정보의 양이 큰 특정 대상에 관한 정보를 받고 그것을 처리한다. 아마 그러한 정보를 굳이 한 번 더 한 곳에 모아놓고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만 정신활동과 행동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중요한 선택에 순간에 통찰을 제공해야 하는 만큼, 의식에게는 자신의 정신 활동의 결과를 다른 이들이 원활히 수용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의식은 통제와 관련된 감각, 대리감을 특히 깊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의식은 자신의 통제와 관련된 편향된 생각을 갖고 있고 또한 우리 생각과 달리 제한된 기능을 갖고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는다. 따라서 정황상 순수하고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합리적인 추론 끝에 불확실성을 통제할 무언가를 찾는 것이 의식의 사명이자 기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대리감에 관한 맹신이 모든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추측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다음 글에는 이러한 추측을 지지할 내용을 조금 더 다루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결정에 있어서 강력한 발언권을 갖는 감정이라는 정보와 사회적인 정보에 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우리는 제한된 예언을 맹신하고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목표로 좇곤 한다. 다음은 감정에 대해 다뤄보자.




참조


Frith, C. D., Blakemore, S. J., & Wolpert, D. M. (2000). Abnormalities in the awareness and control of action.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 355(1404), 1771-1788.


Frith, C. (2005). The self in action: Lessons from delusions of control. Consciousness and cognition, 14(4), 752-770.


Haggard, P., and Tsakiris, M. (2009). The Experience of agency feelings, judgments, and responsibility. Curr. Dir. Psychol. Sci. 18, 242–246. doi: 10.1111/j.1467-8721.2009.01644.


Libet, B. / 1983 / Time of conscious intention to act in relation to onset of cerebral activity (readiness-potential). The unconscious initiation of a freely voluntary act / Brain 106 : 623~642


Persaud, N., McLeod, P., & Cowey, A. (2007). Post-decision wagering objectively measures awareness. Nature neuroscience, 10(2), 257-261.     


Wegner DM, Wheatley T. (1999). Apparent mental causation. Sources of the experience of will. Am Psychol. 54(7):480-92. doi: 10.1037//0003-066x.54.7.480. PMID: 10424155.




이전 02화 더 우월한 목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