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다시 정리해보는 털 없는 원숭이와 삶의 목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살기는 싫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끝에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거대한 두려움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을 갖고 있기에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졌을 때, 그 이전의 시간이 무엇을 남겼는지 평가한다. 그 평가가 주는 의미와 보람으로 끝을 담담히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평가는 공허함과 후회로 덧칠되어 있는 것만 같다. 정석적인 삶을 멋지게 살아온 것만 같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벌써 이렇게 늙어버린 것이 너무 슬프다는 한탄을 했고 그 옛날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고대 이스라엘의 한 왕 또한 말년에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을 남겼다. 그들은 생명력 있게 요동치는 일을 멈추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살고는 싶었지만, 그들과 같이 끝 가까이에 가서는 그전까지의 삶을 모두 부정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한 걱정을 하게 된 시점부터 나의 목표는 그들처럼 후회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가끔은 삶의 의미, 목표, 답, 조건, 진리 등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해 왔지만 어쨌든 정확한 목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교 때는 그 방법을 찾아내겠다며, 여러 교양과목을 듣다가 결국 심리학 복수전공을 이수했다. 20대 후반에는 그 방법을 찾는 일에 매진하겠다며, 다니던 일을 관뒀다. 약 2년 동안 공부하면서 그 방법을 찾는 여정을 글로서 연재했다. 그렇게 털 없는 원숭이와 삶의 목표라는 글이 완성되었다.
공부하며 글을 쓰는 경험은 분명 많은 것을 남겨줬다. 독자를 가정하고 글을 쓰다 보니, 글을 더 논리적으로 또 쉽게 쓰고자 깊게 고민해보지 않고 당연하게 써오던 많은 개념을 뜯어보고 더 엄밀하게 설명하고자 노력을 해볼 수 있었다. 또 여러 연구를 읽고 해석하며 주장을 만들거나 반대로 주장의 근거를 찾는 연습을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의미가 있는 소중한 글이 완성되었으나, 자식 같은 그 글은 너무나 많은 내용이 복잡하게 담겨있었다. 당시에는 결론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했었고 그 결과, 결론을 향해 너무 크게 돌아가는 글이 되었다. 선생님과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는 목적과 여정은 희미해져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그 글을 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나의 생각과 글에 담겼다.
일을 시작하니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금방 담임선생님과 같이 아무런 준비 없이 삶을 돌아보게 될 시기를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을 관두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거대한 불안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신 그것보다는 작은, 다른 거대한 불쾌함을 감수해야 했다. 직장을 관두고 느껴지는 불쾌함은 매우 다채로웠다. 동료가 주는 소속감과 인정에 목마르기 시작했고, 남들처럼 살지 않고 경력 공백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조급해져 갔다. 매일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점점 더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어쩌면 글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그 대단한 글이 나를 벼랑 끝에서 금방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헛됨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에 조금씩 삶에 관한 대단한 통찰이 남기자는 목적을 더하며 글을 썼던 것 같다.
결국 명료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기 어려운 책이 완성되었다. 그 글로 투고 했으나 수십번의 거절 메일을 받았다. 실패를 안주삼아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던 도중, 삶에 관한 거창한 얘기를 시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 하고자 했던 얘기에서 조금은 먼, 아주 약간만 걸쳐 있는 얘기를 마치 아주 중요한 내용처럼 얘기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삶의 답, 의미, 목적 등 거창한 표현이 섞여 마치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알고 싶었고 또 아는 것은 고작 담임선생님처럼 후회하지 않을 방법뿐이었는데 그것에서 조금 멀어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진정으로 원했던, 후회하지 않을 방법에 관해서만 명료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앞으로 나눌 얘기를 아주 간단하게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이 흘러 삶을 돌아보는 순간에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느낌과 믿음을 유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잘 될 것이라는 느낌을 삶의 통제에 관한 낙관적인 정보라고 표현하는데 어쨌든 최종 목표를 위해 삶의 통제에 관한 낙관적인 정보를 반복적으로 형성해 그 지속시간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서는 우선 통제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능한 통제와 불가능한 통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가능한 통제로 통제에 관한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동시에 통제에 관한 관점과 깊게 얽혀 있는 삶에 관한 관점 역시 전환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통제에 관한 정보가 생성되는 구조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해당 정보 처리와 관련된 뇌에 관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통제를 통해 통제에 관한 낙관적인 정보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통제의 주된 대상인 보상, 위험 그리고 가장 강력한 보상이자 위험인 인간관계와 관련된 경험이 필요하다. 각각을 전환된 의미로서 통제했다고 느낄 행동을 하게 되면 낙관적인 정보가 생성될 것이고 그 결과 낙관적인 믿음과 느낌의 지속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시간이 흘러 삶을 평가할 때, 남은 시간을 바라보며 후회하기보단 남은 시간을 지나간 시간처럼 즐길 방법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해당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최종 목표. 시간이 흘러도 계속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삶을 누리는 것
중간 목표. 삶(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통제에 관한 낙관적인 정보 형성 반복
초반 목표. 삶과 통제에 관한 관점 전환의 필요성 이해와 관점 전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 통제와 삶에 관한 관점 전환을 위한 뇌에 관한 공부, 위험 (불안, 불확실성)을 대항하기 위한 선택 경험 형성, 주도적인 보상 발굴 경험 형성, 인간관계에서 오는 긍정적인 느낌을 적극적으로 누리기 위한 생각 전환
사적이고도 또 추상적인 단어가 섞여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 일 수도 있다. 앞으로 천천히 이에 관한 얘기를 이어 나가 볼 것이다. 나를 포함해 여정을 함께한 이들 모두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더 삶을 생명력 있게 누릴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