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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시딘의 이야기 14

인간관계의 해자에 대하여

by 톰슨가젤

아침 꼭두새벽부터 진동으로 해둔 휴대폰이 울리는 것이다 다시 눈을

한참이나 감았다가 간신히 일어나 물을 마시고 휴대폰을 열어본다

뉴스를 보고 카톡메시지를 열어보았다

"@@아 생일 축하한다" 유일한 목사친구가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김후시딘은 이런 낯 간지러운 건 질색이지만 고맙게 인사를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카톡과 관계의 공백에 색칠을 해본다 으레 그렇듯 대화는 소리 없이 멈춘 기차처럼 "그럼 잘 지내고"

란 단어로 끝으로 전진하지 못한다.


김후시딘은 빵쿠폰을 가지고 다시 롤케이크를 사러 가서 결재를 하고 나오는데 같은 빵을 앞에서는 천 원 싸게 파는 것을 보고 아니 같은 빵을 하고 문득 생각했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일 게 뻔함을 알기에 그냥 구매한 빵을 들고 동네 상가에 있는 약국으로 갔다 작은 유리문을 통해 약사님이 있나 확인한 후 들어가니

다른 아주머니와 긴 대화를 하고 계시기에 기다리다가 아주머니가 나간 후 말을 건넸다

"저번에 항우울제 처방받을 때 감사해서요 "

약사님은 "아 약사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죠"라고 말씀하신다

김후시딘은 약사님의 얼굴을 본능적으로 관찰했는데 오늘은 저번처럼 자상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약간은 사무적이고 근엄한 느낌에 당황함을 느낀 것이다

약사님이 비타민 3포를 건네면서" 이거는 오후에 나른할 때 한번 드셔보세요 "

김후시딘은 짧게 답한다 "네 아 그리고 겔포스 한포 주세요"

겔포스 값을 결제하고는 가려는 찰나 "빵 잘 먹을게요"라고는 약사님이 말하신다


김후시딘은 "네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며 나오며 생각이 그를 습격한다

"왜 오늘은 저렇게 근엄하고 거리를 두는 표정이지.."

그건 아마도 해자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후시딘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에서의 해자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 다가오려고 하면 표정 말투 여러 가지로 소위 철벽을 친다는 느낌의

경계태세를 취하는 것이다 약사님도 그럴 것이다 호의를 베풀고 그것에 보답을 받고 관계가 탁구공

왔다 갔다 하듯 두어 번 반복되다 보면 인간에게는 특히 호의에 굶주린 인간에게는 기대라는 악습이

떠오르고 그게 상대에게 원망이라는 과실로 열리는 경우를 이미 학습해서 알고 있는 것이다


김후시딘은 쓴웃음이 아니라 그런 해자를 가진 약사님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려는 그리고 받아주어야 하는 운명 같은 삶 어쨌든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김후시딘이 생각해 두었던 바를 실천한 것이라 김후시딘은 만족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자기 위로가

아닌가 하는 상대를 높이는 것인지 자기를 높이는 것인지 매우 의문스러운 기분 나쁨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언제나 기분이 홀짝 같지만 오늘은 스케줄이 많기에 시간의 습격은 방어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기도 하며 오래전에 중고마켓에 올려두었던 천주교성경책과

필사노트를 구매하신다는 분과의 약속도 잡아 놓았다

성경책과의 이별을 하고 독서모임으로 가면 될 듯하다 김후시딘은 독서 발제문에 대한

답을 어제 대충 요약해 놓았고 출력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지만 휴관일임을 알고는 핸드폰을 보면서

발제문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둔다

점심 나절이라 출출해진 그는 근처의 국숫집에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계산을 하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답이 없으시다

김후시딘은 또 생각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인간에게 다가서는 것도 인간이 다가오는 것도 그리우면서도 첫사랑과의 키스처럼 어색하고 낯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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