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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시딘의 이야기 12

편견 없는 눈빛

by 톰슨가젤

김후시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새벽 나절에 1-2시간 자고 뜬눈으로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독서모임에 쓸 책을 대출하려 했지만 신기하게도 어제저녁까지 대출 가능한 책을 누군가 대출해 간 것이다

걸어오는 동안 체온이 올랐고 도서관내의 실내온도는 매우 더웠기에 김후시딘은 책으로 부채질을 해가며

지적허영을 보충하는척할 책을 몇 권 고르고 있다 어차피 또 안 읽을 책들을 몇 권 빌린 후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에 이런저런 구경을 한다 분명 집에 멀쩡히 있던 손톱깎이가 사라진걸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상점에 가서 하나 다시 샀고 집 앞 가정의학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제가 잠을 잘 못 자서 술에 의존해서 자고 있긴 한데 잠을 잘 자고 싶어서요

수면제를 처방받고 싶습니다 한 번도 받은 적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의사는 1초 만에 김후시딘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처방해 주었다 김후시딘은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옆에 있는 약국의 약사 때문이다 이 약사는 정말 사람을 차별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빛을 가진 사람이다

김후시딘은 이약사와 매우 흡사한 약사와 큰 대학병원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김후시딘은

파견근로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그 약사도 역시 편견 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그때 김후시딘은 처음으로 지식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이었다 집 앞 약국의 약사도 마치 판박이처럼

그런 좋은 기운을 주는 것이다 약국에는 할머니 5명이 의사의 무차별적인 약공격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김후시딘은 이 순간 삶의 연장에 대한 의욕이 거세된 것이다

" 이런 식의 삶이라면 굳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육체는 삶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약사는 수면제 5알을 주면서

"처음이시면 반알부터 드셔보세요 드시면 5분 내로 잠이 들것입니다 그런데

낮에는 조금 주무시나요?"

김후시딘은 답한다 "네 주로 낮에 잡니다 "

약사가 말한다" 그러면 밤낮이 바뀐 것인데 식사는 잘 드시나요?"

김후시딘이 말한다" 하루 한두 끼 정도 먹습니다"

약사는 말한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잘하셔야 잠도 잘 잘 수 있습니다"


김후시딘은 얼마 전 구매한 자전거를 당근마켓에 다시 내놓고 금방 구매자가 나타나

기분 좋게 할인을 해주어 금방 판매를 하고 차에 앉아 문득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찾아온다

지금 당장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사가 알려준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전화를 하니 상담원은

정말 김후시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세상에서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매우 긴 시간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상담원은 그의 이야기를 잘 듣고 조심스레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김후시딘이 전화를 끊기 전까지 수화기 너머로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그 부드러운 침묵 김후시딘이 얼마 전 이별한 그 마지막 순간의

수화기 너머 그 침묵과 같은 침묵이건만 칼날 같은 침묵을 기다리는 침묵으로 지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후시딘은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와 급격히 밀려오는 우울감에

이런저런 망상을 하고 엄청난 감정변화가 쉴 새 없이 들이닥친다

해결된 것 같은 마음은 다시 풍파를 일의 키고 정신은 혼미하다 분명 아침에 있던 의욕은 어디로 숨은 지 대체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할머니들 5명 지팡이를 짚고 뼈만 남은 앙상한 몸집을 지니고 약사 앞에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있던 노인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시절에 자살하는 젊은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편견 없는 그 눈빛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야 하고 아무나 만들 수 없는

눈빛 어떠한 사명감 같은 것들로 오랜 세월 내적투쟁의 담금질로 탄생하는 눈빛

세상을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지금 김후시딘의 마음도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김후시딘은 인간의 단점만 칼같이 찾아내어 인간들을 하나둘 목록에서 지웠던 것이다

그리곤 혼자가 되어 인간에 대해 그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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