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가 피는 귤을 보며
김후시딘은 며칠 전 냉장고에 있던 마지막 한 개 남은 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후에 먹으려고 하니
한쪽에 조그맣게 멍이 들어 물컹해져 있었다 귤을 다시 내려놓고는 다른 일로 잊고 있었더니
이래저래 3일 정도가 지나버려서 귤에 하얀 포자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귤은 버려져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김후시딘은 당연하듯이 귤을 냉동고에 보관 중이던 작은 음식물들 봉투에 넣었다
문득문득 과거의 기억에 발목이 잡혀 고통받을 때가 있는데 불현듯 하얀 곰팡이 핀 귤이 생각났다
곰팡이핀 음식은 누구도 먹지 않을 텐데 곰팡이핀 인간관계는 왜 자꾸 뒤돌아 보는 것인가 곰팡이핀 음식을
버리고 나서 뒤돌아 보지는 않지 않는가 그건 아마도 그 음식은 금방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인간관계도 누가 잘잘못을 했건 곰팡이가 핀상태라면 관계소멸이 맞는 것일 것이다
새벽에 바로 자면 얼마나 좋으련만 수십 년간을 뜬눈으로 지새운 밤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또 밤을 새우고 나니 아침나절이 돼서야 약간은 물컹한 귤같이 멜랑꼴리 한 기운이 도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 1500원짜리 두부를 하나 발견하고 삶아서 그때 그 간장을 뿌린다
(그 반찬가게에 다시 가야 한다 )
귤에 포자가 피기 전에 먹을걸 관계에 곰팡이기 피기 전에 잘 닦을걸 김후시딘은 관리라는 거에 약간은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김후시딘은 전 직장에서 젊은 선배에게 "@@님 @@들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하길래 김후시딘은 말했다" 저는 인간은 관리하지 않습니다" 언어적 표현의 반감일지도 모르겠다
관리보다는 다른 단어였다면 발끈하지 않았을 텐데 어린 녀석이 그러니 더욱 반감이 생겼나 보다
관리에 대한 저항에 대하여라고 부제를 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역시 소주 몇 잔이 돌아야 그의 cpu도
조금은 궤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관리 인위적에 대한 저항도 어쩌면 그 자체로 있어 보이고자 하는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자 곰팡이가 피기 전에 관리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의 미학적 관점에서는 사실 그 포자가 피는 귤은
상당히 아름다워 보였다 썩어간다기보다는 아주 멋진 무언가로 변한다는 느낌이었다
귤색에 하얗고 녹색의 포자들의 색채 대비때문이련지 아니면 김후시딘 스스로가 포자가 피어가는 귤
같다는 동질감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