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다. 개는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을 돌아다니며 영역 표시를 하고, 새로운 장소도 곧잘 다닌다. 고양이는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극도로 불안해한다. 생존의 문제가 아닌 이상 영역을 옮기거나 확장시킬 이유도 없다. 새끼 고양이들이 크면 엄마 고양이의 영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 떠난다. 우리 집 고양이도 영역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작은 방 행거 뒤, 소파배드 위의 분홍색 이불, 이층 침대의 윗 층, 캣타워까지가 확고한 자신의 영역이다. 감사하게도(혹은 괘씸하게도) 일층의 내 침대는 중립지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없을 땐 자기 영역, 내가 깨어 있을 땐 공동 영역, 내가 잠들면 영역 밖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잘 때도 옆에 있어주면 좋으련만, 내가 잠들 준비를 하면 몇 시간째 옆에 붙어있다가도 자리를 비켜준다. 나는 잠버릇도 없으니 안 그래도 되는데 조금 서운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내 동생은 소파배드와 바닥, 자기 침대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매번 자는 위치가 바뀌는 반면, 나는 집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내 침대에 반쯤 기대어 있다. 내 침대는 확고한 내 영역이다. 내 친구들도 '유경이는 집에선 침대에만 있잖아'라고 말할 정도니, 고양이의 눈에도 '저 인간은 항상 저곳에만 있군. 저곳은 저치의 영역이야' 하나보다. 나도 영역동물일지 모른다.
실제로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온전히 내 영역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 옆에 누군가 있으면 못 자고, 침대가 아늑하지 않으면 못 잔다. 밤새워 놀 때도 친구의 자취방에서 자거나 첫차를 타지 않고 꼭 졸릴 때쯤이면 택시를 타고 돌아와 내 집, 내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나의 모든 생활권은 침대를 중심으로 확장되어 간다. 가끔은 직장이나 학교 근처에도 영역을 두긴 한다. 이를테면 단골 바, 단골 카페, 몰래 낮잠 잘 구석진 곳 따위이다. 대학생 땐 200번대 서가의 구석진 곳에서 잠을 청했다. 200번대 서가에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다. 창틀 부근에 자리를 잡고 햇살을 받으며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모든 동물에게 영역은 중요하겠지만 고양이와 개처럼 정도의 차이가 있을 거다. 마찬가지로 인간 중에서도 영역에 집착하는 인간과 연연하지 않는 인간이 있지 않을까? 내게 사회적 의미의 '본가'는 없지만, 나는 동생과 둘이 사는 집을 본가로 생각하고 있다. 직장 근처에 자취방을 두었어도, 이곳은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임시 거처일 뿐. 서울에 있는 본가로 올라가야지만 내 집에서 쉰다는 감각이 살아난다. 고양이와 동생이 있는 내 집. 벌써 5년째 살아가는 곳. 이사를 자주 다녀도, 내 침대와 이불과 고양이와 동생이 있으면 그곳이 나의 영역이 된다.
내 영역 안에 홀로 있는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때로는 위대하기까지 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집에서 뭘 해? 왜 집에 혼자 있고 싶어 해? 안 심심해?"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이 기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냥 영역 인간과 아닌 인간의 생득적 차이니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글을 쓰는 공간도 나의 영역이다. 홀로 골몰하고 홀로 표현하는 공간. 만년필로 적든, 타자를 치든, 영역 안의 나는 왕처럼 군림하기도 하고 광대처럼 외롭기도 하다. 영역이 많기에 지켜야 할 것들도 늘어난다. 계속해서 혼자만의 규칙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오늘은 특히 더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까, 이불에 파묻혀 한껏 웅크리고 살에 닿는 촉감에 집중해야겠다. 그리고 그간 쓴 글을 곱씹듯이 다시 보고, 터만 남은 옛 영역들에게 안부를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