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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진 난 유리멘털

흠집 많고, 쉽게 깨질 것 같은 유리이기에, 나를 아낀다.

by 도토리 Dot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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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집이 잔뜩 난 유리는

작은 스크래치 하나에도

금이 가거나 깨진다고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습니다.


나는 유리멘털입니다.


사소한 말에 흔들리고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투명하게 비치는 유리처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수많은 스크래치와 흠집으로 가득합니다.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같은 유리라도 나는 방탄유리처럼

단단하다고 믿었고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작은 충격에도 오래 흔들리고

사소한 스크래치에도 전체가 반응합니다.


흠집이 잔뜩 난 유리는

더 이상 투명하게 비치지 않습니다.


나는 유리멘털입니다.




<작가의 서랍>


요즘 들어 자주 배가 아픕니다.

작은 스트레스만 받아도

속이 금세 뒤틀리고,

아무 음식도 삼키기 힘들 만큼 위가 쿡쿡 아려옵니다.


나는 유리멘털입니다.

그것도 흠집이 잔뜩 난 유리


억지로 참아내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흠집으로 남아

이제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깨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이 힘들어도
몸은 버텨주었습니다.
차라리 무너지는 건 마음이었고,
몸은 끝까지 나를 붙잡아주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참아온 시간만큼, 쌓여온 무게만큼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도 마음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알려옵니다.
더는 괜찮은 척하지 말라고,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유리멘털입니다.

흠집 많고, 쉽게 깨질 것 같은 유리처럼.
하지만 동시에,
그 깨지기 쉬운 마음 덕분에
나를 지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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