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못할 상황으로 타인과 식사를 같이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타인은 지인이기도 하고 친구일 때도 있습니다. 외출할 땐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꽤나 공들여서 식이관리를 하지만 더불어 먹어야 할 때는 메뉴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가려먹을 수밖에 없고, 그들 눈에 저는‘뭘 저리 유난스럽게’로 비치곤 합니다.
하루는 여러 명의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메뉴는 프랜차이즈 샤브샤브.
혈당관리에 좋고 맛도 좋은 채소와 고기가 메인인 샤브샤브라니 속으로 아싸싶었더랬죠. 제가 배추와 팽이버섯, 표고버섯, 얇은 샤브용 고기를 번갈아 가져오는 동안 눈앞의 지인은 다양한 샤브샤브 재료를 골고루 가져옵니다. 칼국수면, 만두, 어묵등 보기에도 맛있어 보입니다. 제가 채소와 고기만 먹는 걸 보고 다른 분이 웃습니다.
“채소를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괜히 겸연쩍어진 저는 자신의 병력을 타인에게 구구절절 밝히지 않고 따라 웃으며
“제가 원래 채소를 엄청 좋아해서요. 요즘 식이요법 중이기도 하고.”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맞은편의 지인이 한마디 합니다.
“난 그냥 먹고 싶은 거 먹고 굵고 짧게 살다 갈래요.”
이 지인은 그날 저녁식사자리에서 제 관리이유를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 아닌지라 그닥 놀랍진 않고 괜히 서로 어색해질까 봐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맙니다. 그저 속으로만 대꾸하죠.
‘굵고 짧게 살다 간다고요? 글쎄요...’
이쯤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혈당관리의 핵심인 식습관통제. 아무리 약을 잘 먹고 운동을 잘한다 하더라도 식습관은 평생 습관으로 같이 가야 할 소중한 친구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든 좋든 싫든 누구보다도 먼저 친해져야 할 존재라는 겁니다. 그게 혈당관리든 다이어트든 그냥 건강관리든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자신에게 엄격했던 관리초기엔 되도록 밀가루를 최소화하고, 과일도 끊고, 심지어 혈당폭발 주범인 당면을 먹지 않으려고 좋아하던 만두나 순대도 끊느라 힘들었는데 이렇게 덤터기로 유난스럽다, 별스럽다는 눈초리는 참 억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이들의 한마디는 똑같이 찍어낸 공장빵 같습니다.
‘나는 이것저것 음식을 가려서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먹고 싶은 대로 먹고살다 갈래요.’
공장빵발언의 자매품은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술, 담배도 다 하시고 믹스커피도 하루 몇 잔이나 드시고도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90세까지 사셨어요.”입니다.
먼저 장수 DNA 집안에서 태어나신 걸 축하합니다. 유전이란 건강이든 두뇌든 참 막강한 것이긴 합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알 수 없다는 진리는 DNA보다 더 막강하더군요.
인생이 마음대로 살아지던가요? 먹고싶은대로 이것저것 먹고 굵고 짧게 살다가는 건 누가 정하는거죠? 누구 맘대로 그렇게 살다갈 수 있나요? 20년을 살 지, 50년을 살 지, 90세까지 무병장수 할지 그걸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아는 사람 있나요?
자유롭게 굵고 짧게 살다가겠다는 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돈보다 귀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지만 살다보면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도 ‘건강’이지요. 확률은 낮겠지만 한 시간 뒤 내 몸에 어떤 사건이 터질지 누가 압니까. 몸에 안 좋은 식품을 판단하고 가려먹는 식습관이 중요한 걸 부인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건강하기 위해선 장수DNA를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그냥 가려먹어야 합니다. 치료보다 예방이 백 배 천 배 중요하다는 걸 저는 몸소 겪었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습니다.
더러 당뇨인중에서도 의사가 알아서 처방해 주는 약만 먹으면 식사는 내키는 대로 아무거나 잘 드시는 분들이 있는대 약 역시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의사도 이야기합니다. 약은 결국 내성이 생겨서 용량도 세질 수밖에 없으니 점차 줄여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요. 그리고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노화’도 혈당관리의 난관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늙어가고 신체기능은 더불어 쇠퇴합니다. 젊어서 혈당에 이상 없으셨던 분들이 70 넘어서 혈당수치 올라가는 경우도 봤습니다. 식습관은 70넘어서 고치기란 젊을 때보다 몇 배로 더 힘들겁니다.
가치관의 차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굵고 짧게 사는 건 적어도 당뇨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입니다. 통제없는 생활은 합병증만 불러일으키고 결국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는 생지옥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없던 책임감마저 생길 지경입니다. 장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는 동안 고통없이 사는 게 더 의미있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이젠 관리를 막 시작했던 5년 전보다 좋아진 건강덕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적당히 자신과 타협하지만 여전히 건강하게 먹으려고 신경쓰는 저에게 별스럽다는 눈초리로 굵고 짧게 타령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이렇게 반응합니다.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아버지, 어머니도 간혹 등장하시더군요)는 술, 담배 실컷 하시고 뭐든 잘 드시고 탄산음료도 매일 드셨는대도 90살까지 사셨어요.”
저도 여전히 속으로만 대꾸합니다.
‘만약 그분들이 술, 담배도 끊으시고, 탄산음료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더라면 120세까지 사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