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
어느 행복한 새벽에
소곤거린다
허공에
닭아 울지 마
닭의 해에
닭이 우는 새벽은
요란스러워
쉿,
어느 못된 미래가 주워듣고
창문으로 들어올지도 몰라
뽀얀 달의 살을 훔쳐
채우고 채워
짧은 청춘이
붉은 꽃으로
쏟아졌다
얼마 전, 생일이었습니다. 예전엔 생일이 마냥 좋았어요. 축하도 받고 선물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는, 말 그대로 하루동안의 나는 세상의 전부를 가진 것 같았죠.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먹으니 생일이란 게 마냥 좋지만은 아니더라고요. 똑같이 축하받고 선물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었어요.
나이 탓일까요? 올해는 엄마생각이 났어요.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요? 아이가 없는 나는 엄마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 하겠지만, 나를 낳았을 때의 엄마가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엄마는 나를 낳을 때를 가끔 얘기합니다.
해 질 무렵, 흔치 않게 집에서 나를 낳았다고, 창문 밖이 소란스러웠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행여, 아이가 놀랄까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혹시나 나쁜 기운이 들어와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몇 번이고 꼭 닫힌 창과 문을 확인했다고도요.
그렇게 엄마는 진통을 고스란히 겪고 나를 낳았습니다. 요즘도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당신 탓이라고 하세요. 임신 중에 혹은, 낳을 때 당신이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닌지. 그렇게 당신이 늙는 것은 생각지도 않아요.
그렇게 어여쁜 나이인 20대에,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때 엄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서 그런 말이 있나 봐요. 신이 모두를 돌볼 수 없어서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어느 흔한 생일, 엄마를 떠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