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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과 심장사이

by 리디아 MJ

〈열 번째 장 – 흔적을 지우는 의식〉

새벽마다

나는 나를 지웠다.

머리카락 한 올,

피부의 각질,

손끝에서 떨어진 미세한 부스러기까지.

모든 것은 증거가 되었고,

증거는 곧 경계였다.

그 경계 안에서

나는 설계되지 않은 존재였다.

공기는 차갑게 흘러

살결을 문질렀고,

세제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 세포의 그림자를 없애는 일,

그것이 하루의 첫 기도였다.

거울 속 얼굴은

언제나 어제와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제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의 의지가 남는다는 것을.

흔적을 지우는 매일은

내 존재를 지키는 매일이었다.

내안의 나를 소멸시켜야 살아난다

텅빈 껍데기로, 살아있으나

비워져야 한다. 제로 베이스

수치는 ‘0’으로 내려앉았다.

아무 것도 없는 바탕,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하는 방어선.

그 위에, 새로운 봄이 심어졌다.

낯선 씨앗은 조심스레 뿌리를 내렸고

나는 그 작은 떨림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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