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장 – 흔적을 지우는 의식〉
새벽마다
나는 나를 지웠다.
머리카락 한 올,
피부의 각질,
손끝에서 떨어진 미세한 부스러기까지.
모든 것은 증거가 되었고,
증거는 곧 경계였다.
그 경계 안에서
나는 설계되지 않은 존재였다.
공기는 차갑게 흘러
살결을 문질렀고,
세제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 세포의 그림자를 없애는 일,
그것이 하루의 첫 기도였다.
거울 속 얼굴은
언제나 어제와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제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
오늘의 의지가 남는다는 것을.
흔적을 지우는 매일은
내 존재를 지키는 매일이었다.
내안의 나를 소멸시켜야 살아난다
텅빈 껍데기로, 살아있으나
비워져야 한다. 제로 베이스
수치는 ‘0’으로 내려앉았다.
아무 것도 없는 바탕,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하는 방어선.
그 위에, 새로운 봄이 심어졌다.
낯선 씨앗은 조심스레 뿌리를 내렸고
나는 그 작은 떨림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