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하나가 되는 정원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by hada



파라솔 아래에는 벌써 빈 좌석이 없다. 조직감이 등나무 같은 플라스틱 의자에

등을 푸근히 기댄 건 앉은 자의 여유로움이다.

상대 쪽으로 몸을 틀고 앉은 무리들이 제각각 행복하다. 유쾌하게 부딪치는 시선과 말에서 마스크 일상의 해방감을 읽게 된다.

표정들은 이미 가을에 닿아 있다 서로에게 빨갛게 물들었고 파랗게 높아지고 맑아져 있다.



시간의 냄새나는 그곳의 나무문을 밀고 들어선다. 주말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라면 이유다.

깍듯하고 생기 넘치는 직원들이 서두름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한결같은 서비스의 질에서 비정규직을 넘어선 젊은이들의 노동이 감사하고 아름답다. 이 터의 힘 때문일까?



오른쪽 공간 창쪽 구석 테이블,

공간의 습관이다. 부엌이 보이지 않는 독립된 작은 거실 같아서 금세 생각의 자유로운 놀이터가 된다. 이 공간의 매력이다.

커피숍이 사람들에게 주말의 쉼터가 된 만큼 목적지의 커피를 마시기란 다분히 운일 때가 많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기막힌 타이밍의 자리 확보는 안도와 희열을 준다.

잔 균열이 가득한 검정 숄더백부터 내려놓는다. 그간의 시간을 나름 소화해 내느라 여기저기 실금 간 영혼을 편히 앉혀 본다.



" 아이스라떼 0.5샷요"

"오늘은 아이스로 드시네요!"

드나든 게 여러 해여서일까? 딸 같은 직원이 아는 척을 한다.

"아주 연하게 해 드렸어요!"

"네, 잘 마실게요~"

칭송받는 커피와 담백한 격식이 마음을 기분 좋게 저어 준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K방직 사무동 터다. 서까래와 마룻대가 보이는 뻥 뚫린 나무 천장은 아직 건재하나 조명 위로 한참 물러나 있어 무의식의 빙산처럼 시야 밖에 잠겨 있다. 고개를 꺾어 가만히 올려다보노라면 긴 시간의 굽이를 품은 굳건한 그것의 정체성에 숙연해지며 천장의 높이가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와닿곤 한다.

꼿꼿한 천장 아래엔 미장이의 손놀림이 느껴지는 희끗희끗한 시멘트 벽, 그리고 붉은 벽돌이 부피를 더하지 않아 공간은 개방감이 크다. 가치에 주목하게 하는 절제 같아 여백은 차라리 겸손하다.

너그러워 보이는 목재와 단호한 콘크리트 벽돌은 이질적이나 K방직의 면 혼방직물처럼 서로를 조화롭게 보충하며 독특한 가치의 상품이 되고 있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공간 이 사림들은 어떤 삶의 직물을 짜며 생활의 온도를 올리고 있는 것일까?



남다른 시대적 배경과 대규모 복합몰 등 뜨거운 공간을 면하고 있는 한 동짜리 붉은 벽돌 건물은 알뜰하게 소비될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 K방직'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를 공모하고 기획 전시하고 있는데 지극히 단조로운 벽면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부드럽게 어깨에 손을 올리는 재즈와 클래식이 영혼의 문을 열 때 의도하지 않은 시선이 그림에 머물러 잠시 갤러리가 된다.

역사와 빵과 커피와 그림이 서로 끌고 밀며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복합 공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 온 사람은 없는 도심 속의 드문 휴식처다.



오늘도 채광이 좋다. 작은 창에 일렁이는 나뭇잎과 햇빛이 도란도란 즐겁다. 고즈넉하다. 햇빛의 각도가 만들어내는 명암이 평화와 휴식을 준다.



뒷문 밖으로 보이는 10월 끝의 뜰이 눈에 가득 들어찬다.

크고 낮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실내를 들여다보고 있다.

꽃이 큰 붉은장미 한 송이가 멀리서도 우뚝하다. 장미의 아름다움이 강직해 보인다. 아름다움의 실현에는 어쩌면 강직함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칠고 부박한 환경에서 누군가에게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지라 어떤 순수함의 발현마저도 강직함으로 보여진다. 계절을 너끈하게 건너뛰며 생명에 엄격함을 보이는 강철 같은 장미에게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여전히 햇빛과 열애 중인 장미의 파트너는 우주다.



후문 앞 나지막한 나무 벤치에 수시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빵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참새들처럼 사람들도 디저트의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 타원형의 벤치처럼 둥글게 마음 순환시키는 모습들이 참새처럼 콩콩 가볍다. 어제의 나를 잠시 닫고 이 시간의 자신들을 열어 본다.



유모차가 짧게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아기가 자는 모양이다.

젊은 부부에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몸을 붙이고 앉아 연신 웃어 젖히는 걸 보니 오랜만의 모임인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자 위에 올린 다리를 꺾고 앉아 주억거리는 중년부인의 표정이 무겁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디저트 방앗간이 인생 방앗간이 된다.

마음을 잘 지어 보기 위해, 맛나는 인생을 위해 겉껍질을 벗기며 속내를 보고 보인다.

사람이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짧은 화면들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평화롭고 활기차고 또 따뜻하다.



잠시 주인공으로 머물다 떠나는 여운 있는 사람들...

빨간 단풍이 그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나를 조명한다. 평점 9.8의 짧은 다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와 다르지 않은 저들에게서 담담하게 나를 바라본다. 편안해지는 유대감이다.

안식을 얻으며 느긋하게 정원을 누린다.

귀가를 잊은 나는 이 정원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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