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보행기에서 투신했어요!!
다짜고짜 한국어 생존기
뒤늦은 학업의 계기는 다양하다. 부모 세대가 자식의 추천이나 격려로 뒤늦게 연필을 잡는 경우가 있지만 아기가 학업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한국어방문서비스는 좀 다르다. 아기가 있어 집합교육에 참석하기 어려운 대상자를 서비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체로 대상자와 협의한 시간이 수업시간이 된다. 아기의 낮잠 시간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생후 6개월까지의 신생아는 일반적으로 수면 시간이 긴 편이라 깨더라도 우유를 먹이거나 일차적인 불편함을 살펴주고 눕히면 된다. 그러나 활발하게 기기 시작할 때부터 걸음마기 아기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기를 수업 현장에 두고 지켜봐야 한다.
거실장 좌탁 식탁의 뾰족한 모서리는 패드를 붙인다. 아기의 손이 닿는 콘센트에는 안전 커버를 씌우고 혹시라도 아기에게 위험이 될 만한 물건은 자취를 감추거나 위로 위로 위치를 이동시키며 안전한 공간을 확보한다. 치운다고 하지만 바닥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청소를 했다'에 안심하면 안 된다. 금세 생활 찌꺼기의 전시장이 된다. 주양육자의 청결에 대한 편차가 있고 안전에 대한 감수성도 다르다.
집은 신박한 맛의 천국이다.
소근육이 발달하기 시작한 아기들은 손에 닿는 물건을 최선을 다해 입으로 가져간다. 첫 꿈을 이룬 듯 뿌듯한 표정은 소중하게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즉석식품이긴 하나 고집스럽게 탐구해 볼 만한 맛이다.
혀는 최대한 침샘을 틀어놓고 미끌미끌 한손 가득 장난감을 충분히 불리며 처음인 양 마지막인 것처럼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정성껏 핥는다. 미각은 높아지고, 창을 든 백만 대군 도깨비 균은 전사하고 시간은 침의 효소로 잘게 분해돼 인식의 영양제가 된다.
이 정도면 재미를 봤다.
장난감을 손에서 떨어뜨린 아기는 금세 다른 먹이를 포착한다. 밤새 후두둑 떨어진 도토리, 아기 다람쥐가 발견했다. 난이도를 높이자.
먼지, 마른 밥풀, 과자 부스러기, 종이조각, 머리카락...
아기에게만 보이는 노다지, 소리 소문 없이
뱃속에 챙긴다.
역시 소울푸드는 말랑말랑 쫄깃쫄깃 지우개.
영아의 안식은 이레이저홀릭 홀릭.
실패한 글자를 지우기 위해 지우개를 찾았을 땐 이미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다.
지우개 단속을 하지만 지우개에 사로잡힌 아기 마음 단속은 수업 중에 어렵다.
이것저것 빼앗기며 자신의 선택이 번번이 차단당하는 아기,
이번엔 멀리 떠나가 볼까!
쓰레기통으로 고고!
즐거운 한국어..
정확한 한국어..
도입, 제시, 연습, 활용...
아기를 마냥 어르고 지켜볼 순 없다. 이물질을 삼켜 안전사고가 나면 큰일이다. 도움이 필요하다. 수업시간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행기에 아기를 강제 착석시킨다. 그러나 보행기도 수업시간을 구제하지는 못한다.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자유를 속박당한 아기의 목숨 건 탈출이다.
쿵!!
일시정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엄마가 찢어지는 울음소리 쪽에서 외친다.
"아기가 보행기에서 투신했어요!!"
엄마 선생님은 환영받지 못한다.
엄마 공부는 응원받지 못한다.
계획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엄마는 만족감이 있을지 모르나 아기는 행복하지 않다.
자신이 원할 때면 어김없이 살을 부비며 따뜻한 말을 속삭여주는 엄마, 그 엄마를 어느 날 불청객에게 빼앗겼다. 이 사람은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시간을 굳건히 채우고 자리를 뜬다.
엄마 어깨 왼쪽 오른쪽을 왔다 갔다 눈 마주치려 해도, 자신과 놀아 달라고 해도, 자신을 안아 달라고 해도, 자신과 침대에 누워 재워 달라고 해도 잠시 눈길을 줄 뿐 엄마는 두꺼운 책과 씨름하며 자기가 아는 진심을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다. 사랑의 양도 사랑의 질도 느낄 수 없는 낯선 슬픔이 찾아왔다.
엄마에게 나쁜 습관이 생겼다. 엄마가 변했다.
머리에 혹이 난 아기를 안고 우리의 사명, 한국어 수업은 다시 시작된다.
울음 딸꾹질을 하는 아기,
포도알 같은 눈으로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곧장 본능으로 정면 승부한다.
팔랑팔랑 손을 앞뒤로 흔든다.
이제 당신은 가야 할 시간!
아기가 '빠이빠이'를 하고 있다.
허를 찔렸다.
시간이 무엇인지 아기는 천천히 배우게 될 것이다.
엄마의 한국어 책이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울음으로 시작한 거부가
낯익히기의 그네를 타다 보면
어느 틈엔 손뼉 치며 오라는 선생님의 품에 폴짝 뛰어내리게 된다는 것을.
한국어의 완주에 서서히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즐거운 한국어, 정확한 한국어
이 모든 것이 오늘 천사에게 내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