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요약 세대의 비극: 질문 없는 정답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대학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런 말을 꺼냈다. “요즘 학생들의 과제물은 역사상 가장 완벽합니다. 문장도 유려하고 논리도 매끄럽죠. 하지만 토론을 시작해 보면 그야말로 ‘빈 껍데기’ 같습니다.”
사연은 이렇다. 학생들에게 두꺼운 전공 서적의 한 챕터를 읽고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AI가 써준 매끄러운 요약본을 그대로 제출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표절 여부가 아니었다. 정작 강의실에서 그 내용을 주제로 질문을 던지자, 학생들은 자신이 써낸 글의 핵심 용어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은 AI가 떠먹여 준 ‘결론’은 알고 있었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과 ‘맥락’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AI 네이티브, 이른바 『요약 세대(Summary Generation)』가 마주한 비극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현상이 대학 강의실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일터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인재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그들은 AI 도구를 활용해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세련된 기획안을 만들어온다. 하지만 “왜 이 데이터를 선택했습니까?” 혹은 “이 전략이 실패할 경우의 리스크는 무엇입니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면 당황하며 입을 닫는다.
정답을 빠르게 검색해 오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지만, 그 정답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사고의 근육’이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마치 요리법을 검색해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어본 사람이 정작 직접 요리해야 할 때는 칼을 쥐는 법조차 모르는 것과 같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성실성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핵심만 빠르고 효율적으로 소비하도록 강요하는 지금의 기술 환경이 만들어낸 구조적인 비극이다. 우리는 긴 글을 읽으며 지루함을 견디는 훈련, 행간에 숨겨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노력,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뇌하는 시간을 ‘비효율’이라 부르며 삭제해 왔다. 그 결과, 텍스트의 맥락을 파악하는 전통적인 문해력은 약화되고, AI가 던져주는 ‘3줄 요약’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지식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효율적인 도구’가 미래 세대의 ‘깊이 있는 사고 능력’을 앗아가고 있다면, 이제는 멈춰 서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AI가 1초 만에 찾아준 정답의 편리함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질문하는 법’과 ‘생각하는 고통’을 잊어버리도록 이대로 방치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김영기 위고컴퍼니 대표이사
*[AI가 주도하는 미래] 6회차 주제는 ‘알고리즘의 편견: AI는 과연 공정한 심판인가’입니다.
출처 : E동아(https://edu.donga.com) 김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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