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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Mar 10. 2024

차찬탱과 함께 즐기는 홍콩의 아침

Lan Fong yuen, Tsui wah in Hong Kong, 24

홍콩의 아침 식사는 차찬탱이라고 하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홍콩의 아침 식사를 소재로 세 곳의 식당을 다뤄 보려고 한다.


사실, 보통 해외 여행을 가면 아침 식사로 호텔 조식을 신청하는 편이다. 오전에는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 일정을 잡곤 하는데, 아침 일찍 가야 한적하게 관람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아침 식사도 빨리 해야 하고, 7시쯤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느니 호텔 조식을 먹는 편이 빠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전혀 조식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이 차찬탱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콩 뿐 아니라 중국, 대만 등지에서도 이렇게 아침을 사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중국 본토의 경우, 맞벌이가 확산되면서 아침을 사 먹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홍콩은 이에 더하여, 워낙 높은 지대로 인해 주택 규모가 작아졌고, 작아진 주택에서 주방 또한 규모가 협소해져 대부분의 주택은 제대로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침을 밖에서 사 먹게 된 것이다.


아침 일찍 홍콩의 거리를 걸어보면, 여기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이 대부분 아침 식사가 가능한 차찬탱 식당이다.


차찬탱을 홍콩의 사전에서 찾아보면, '음료와 죽, 면, 밥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식당' 정도로 정의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아침만 영업하고 문을 닫는 것은 아니고, 아침에도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대부분 상호에 '빙실', '찬실', '커피숍' 등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고 한다.


유명한 차찬탱 식당으로는 그 역사가 오래되어 우리나라에도 자주 소개된 '미도 카페', '란퐁유엔', '호놀룰루 카페'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오래된 유명 식당들보다 훨씬 접근성이 좋은 대형 체인점인 '만와' 나 '취와' 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공항은 물론이고 시내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마치 앞의 가게들이 '신당동 마복림 떡볶이' 같은 느낌이라면, 뒷쪽은 '감탄 떡볶이' 내지는 '동대문 엽기떡볶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들도 있다. 차찬탱이 아침 일찍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다른 특별한 점이 없다면, 굳이 아침 일찍 찾아가 볼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차찬탱을 독특한 식문화로 여기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다. 이번에는 오래 된 식당인 란퐁유엔과 체인점인 취와, 두 곳의 식당을 소재로 차찬탱의 독특함에 대해 기록해 보고자 한다.






먼저, 소호 거리에 위치한 대표적인 차찬탱 맛집 중 하나인 란퐁유엔. 란퐁유엔은 1952년에 오픈하여 유명한 차찬탱 가게들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주윤발과 장국영의 맛집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신문기사, 방송, 가이드북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되어 워낙 유명한 곳이다. 직접 가서 보면, 우리나라의 길거리 토스트 노점을 연상케 하는 가게 외관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안쪽으로 식당이 있는데, 옛날 동네 떡볶이 가게가 연상되기도 한다. 앞에서는 조리를 하고 있고, 안쪽으로 제법 넓은 좌석이 있다.


아침 시간인지라 아침으로 가능한 메뉴들을 붙여 놓았는데, 여기서 차찬탱의 독특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란퐁유엔의 아침 세트 메뉴 가격은 42홍콩달러에서 50홍콩달러 수준으로, 가장 비싼 세트를 주문하더라도 만원이 넘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에는 커피 또는 차가 포함되어 있어, 별도로 음료를 주문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뒤에서 소개할 체인점 형태의 식당들은 더 저렴하다. 두 번째는 메뉴. 위에서부터 쭉 살펴보자면, 소세지와 달걀, 마카로니 스프가 보인다. 그 다음으로는 소세지와 달걀 그리고 크리스피 번. 대충 우리나라 길거리 토스트 가게 같다 싶다가도 콘 비프, 마카로니 토마토 수프, 스테이크에 치킨 필레를 보고 나면 한 주방에서 이 요리가 다 나온다고? 라고 되묻고 싶어진다. (물론, 가만히 보면 손이 그렇게 많이 갈 만한 메뉴는 없다.) 잘 보면 이 세트 메뉴 말도고 인스턴트 누들 세트나 유명한 파인애플 번, 비프 텅(우설) 번, 폭 찹 번 등 별별 요리가 다 있다.


식당 내부는 사람이 많은 편인데, 관광객 절반에 동네 사람 절반 정도 구성으로 보였다. 당연하게도 합석을 시켰는데, 합석도 하다 보면 별로 옆 사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큰 테이블에 다섯(!) 팀이 앉았는데, 그 중 우리를 포함한 세 팀은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 메뉴판을 주니까 한문이나 영어가 서툴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는 처음에 들어가면서 두 명이라고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들어갔더니 중국어 메뉴판을 주었다. 그래서 주문 다 하고 옆 팀을 보고서야 한국어 메뉴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카로니 토마토 수프. 차찬탱을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독특한 음식이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맛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마요네즈나 치즈를 뿌리지 않은, 그냥 삶은 마카로니를 먹는 경우가 잘 없으니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리고 토마토 소스라기보다는 토마토 국물 느낌인데, 미지근한 토마토 국물은 토마토 특유의 감칠맛이 약간 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슴슴하다. 햄 또한 우리가 아는 그 맛. 전반적인 맛의 강도는 약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 슴슴한 토마토 국물이 입맛에 맞느냐 여부로 결정되는 느낌이다.


세트 메뉴를 주문했기 때문에, 이렇게 빵을 하나씩 주는데, 이 빵이 의외로 맛있다. 따뜻하고 고소해서 취향에 맞았다. 안에는 버터가 발라져 있었는데, 오히려 이 빵의 맛의 강도가 마카로니 수프보다 더 강한 편이었다.


다른 메뉴는 소시지와 계란. 이거야말로 특별할 것은 없는 메뉴인데, 소시지가 묘하게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과는 다른 맛이다. 약간 향신료가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빵이 같이 나온다.

같이 주문한 음료는 밀크티와 레몬티. 과거 이 란퐁유엔이 유명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밀크티를 걸러낼 때 실크스타킹처럼 촘촘한 망사(또는 비단천이라고 한다)에 걸러 내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별도로 가게에 설명이 없다 보니 더 이상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차찬탱의 음식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못 먹어 볼 음식은 아니다. 이 다양한 음식을 한 공간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독특한 특징이지만, 외국인이 보면 우리나라의 분식 체인점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약간 허름하고 낡은 테이블 사이사이 비좁은 틈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척척 내어 놓는 무뚝뚝한 서버들이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그리고 음식이 독특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아주 처음 보는 음식들도 아니다.


대신, 홍콩의 차찬탱은 홍콩 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특징이 있다. 전통적인 중식 스타일의 죽부터 시작해서 서양 스타일의 토스트와 소시지, 계란까지 모두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이 작은 땅 안에서 일어난 문화의 융합을 보여 준다. 정신없을 정도로 몰아 넣은 좁은 테이블과 그 테이블 사이사이를 누비며 재빠르게 음식을 내어 오는 주방과 서버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홍콩의 높은 임대료를 상징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차찬탱 문화가 발달한 이유 중 하나는 홍콩의 높은 임대료로 인한 조리시설 없는 작은 주택구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식당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음식을 내어 주고 빠르게 테이블을 회전시켜야만 식당도 그 임대료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을 비울 수 없어 합석 문화도 생겨나고, 식당은 모든 시간마다 장사를 하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각 시간대마다 다른 메뉴를 내어 놓는다. 홍콩에 그렇게 많은 미슐랭 식당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슐랭 스타를 받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스타를 받는 즉시 주인이 임대료를 올려 버리기 때문이다.



이 임대료 때문에 없어질 뻔 했던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너무나 잘 알려진 태창병가, 타이청 베이커리다. 란퐁유엔 소호점 바로 옆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두 곳을 함께 방문하는데,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패튼이 이 집의 에그타르트를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타이청 베이커리 역시 임대료 인상 때문에 사라질 뻔 했다가, 시민들의 모금으로 간신히 버텨 내었다고 한다. 홍콩의 그야말로 '살인적인' 임대료가 빚어내는 여러 가지 모습을 이 차찬탱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홍콩 하면 생각나는 특유의 다소 번잡스럽고 (엄밀히 말해) 깨끗하지 않은 분위기가 싫다면, 또 다른 차찬탱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찬탱은 란퐁유엔이나 미도 카페 같은 곳이지만, 실제로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은 대형 차찬탱 체인점이다. 그 중 우리가 방문한 곳은 '만와'인데, 산책하기 좋은 난리안 가든 바로 근처에 있다.

만와 또한 전형적인 차찬탱의 문법을 따라간다. 다양한 종류의 아침 세트, 점심 세트와 언제든지 가능한 식사가 있는데, 메뉴의 폭이 대단히 넓고 또 다양하다. 스낵 란에는 샌드위치부터 에그타르트, 굴 소스를 뿌린 채소 볶음까지 중식부터 양식까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심지어 음료 란에는 오키나와 흑설탕을 사용했다는 메뉴도 보인다.


주방은 많은 사람들이 위생구를 철저하게 갖추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란퐁유엔의 주방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홍콩 특유의 분위기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급식 식당같은 모습이다. 식당 내부도 깔끔하고, 특히 어지간해서는 합석이 없다. 테이블이 작기는 하지만 2인, 4인 사각형 테이블인데, 각각 테이블마다 칸막이를 설치해 놓은 것이 우리나라 아웃백 스테이크 같은 테이블 배치다. 한편으로는 편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특유의 분위기 대신 익숙한 환경이라 편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큰 특징은 없으나, 그 특징 없음으로 인해 편안한 맛이다. 규격화된 식기에 나오는 음식은 속된 말로 '먹어도 배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신뢰감을 준다. 엄밀히 말하면, 소시지와 계란의 맛은 란퐁유엔이나 취와나 큰 차이가 있다고 하긴 어렵다. 차이가 있다면 너무 예상 가능한 빵이 나오는 취와보다는 란퐁유엔의 빵이 그래도 조금 더 맛있었다는 것, 그리고 밀크티의 경우에도 란퐁유엔이 조금 더 맛있었다는 것이다. 대신 가격은 란퐁유엔도 저렴하긴 했지만, 시설이 더 좋은 편이었음에도 취와는 토스트 세트 가격이 약 40홍콩달러 정도였다. 






차찬탱에서의 식사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면, 음식이 기억에 남을 만 한 독특한 느낌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먹어볼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딤섬을 먹어볼 수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홍콩에서 먹은 딤섬이 더 저렴하고 더 맛있었다. 하지만 란퐁유엔이나 취와의 토스트와 계란은, 거칠게 표현하면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우리나라는 홍콩과 달리, 원룸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는 조리할 수 있는 주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밀크티는 분명 맛있었지만, 그것이 차찬탱이기 때문에 맛있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차찬탱에서의 식사는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재미있는 것은, '란퐁유엔' 못지않게 '만와' 에서의 식사도 인상적이었다는 점이다. '란퐁유엔'은 높은 임대료에서 비롯된 홍콩 사회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면서도 기대했던 '홍콩영화' 속 홍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쁘고, 약간은 허름하고. 화려한 마천루로 출근하기 전 작은 가게에서 재빠르게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홍콩 사람들. 특히 마카오와 비교할 때 약간의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홍콩에서 가장 여유 있어 보였던 식당은 노인들이 많이 찾는 딤섬 노포 '린흥귀' 였다.)


'만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와 거의 다를 것 없는, 외국같지 않은 홍콩의 모습이었다. 약간 외곽에 있는 곳을 방문했기 때문인지, 특별히 급하게 식사를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없고 굳이 자리를 채우고자 빡빡하게 합석을 시키지도 않았다. 애초에 테이블을 2인, 4인 등 소규모 고객을 위주로 준비해 놓은 것이 우리나라 분식집과 비슷했고, 내부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10여 곳의 국가를 여행하면서 가장 외국 같지 않았던 곳이다. 그래서 역으로 인상적이었다. 세계화라는 진부한 표현이 새삼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편안하고, 한편으로는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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