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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속의 삶

이야기를 마치며

by 진아름

이틀 내내 비가 내렸다.

빨래를 실내에서 건조하기가 찝찝해 밖을 내다보며 기다렸다.

비가 그치기는커녕

때 묻은 허물만 늘어갔다.

아무래도 빨래방에 가야겠는데, 여전히 비가 내린다.

습한 날의 빨래 실내건조도, 빗속을 뚫고 빨래방에 가는 것도 싫다.

일단 커다란 타포린 가방 두 개에 색을 구별하여 빨래를 담아둔다.




운전기사 역할을 맡은 내가 큰 아이의 특강 수업에 따라나선다.

나의 꾸러미는-

노트북과 핸드북, 약간의 필기도구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주어진 낯선 곳에서의 4시간이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이 시간에 내 몸이 메어있다고 생각해야 하나.

굳이 뭘 생각하나.



어느 카페의 적당히 단단한 의자에 몸을 맡긴다.

아이 수업을 마치고 들릴 만한 식당들의 위치와 주차상황

기다리는 동안 인근에 장을 볼 수 있는 큰 마트가 있는지도 찾아본다.

그 와중에, 매번 커피 값을 쓸 수 없지-하는 알뜰한 생각에 가까운 도서관도 찾아본다.

나의 평범한 상식으로는 가장 조용한 곳이 스터디 카페일 것 같아.

반쪽이라도 좋으니 어느 창가에 붙어서 내려다 볼만한 전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곳으로 엄선해 본다. 6층에 있네. 아주 좋아.




큰아이 일정에 엄마가 운전기사로 나서고, 그런 엄마를 작은 딸이 따라나선다.

작은 아이의 짐꾸러미는

받아쓰기 연습노트와 학원 숙제, 책 한 권,

편의점에서 산 간식거리.


처음으로 스터디카페라는 곳에 가본다.

넓은 창으로 밖이 내려다 보이는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엄마와 한참 동안 이야기한다.

스터디 카페의 특성상 휴게실이라고 하더라도 대화는 조용조용히 해야 하는데

열심히 공부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지난번에 갔던 스터디 카페가 재미있어서

또 엄마와 함께 가겠다는 작은 아이를 보고

아빠가 따라나선다.

그의 동행목록은

커다란 빨래더미가 두 개,

그리고 최애 작가의 책.

낯선 동네에서 빨래를 해도 집 앞 단골집 빨래방에서 했을 때와 똑같이 뽀송한 결과물을 만난다.

다 된 빨래는 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도대체 스터디카페가 어떤 곳이길래 우리 집 꼬꼬마가 재미있다고 표현했을까?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주어진 낯선 곳에서의 4시간이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이 시간에 온 가족의 몸이 메어있다고 생각해야 하나.

굳이 뭘 생각하나.




브런치북과 함께 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촌각을 다툴 만큼 급한 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평범한 아줌마의 소박한 일상을 기록하면서 어찌나 광활한 감정의 여행을 했는지 모릅니다.


언제나처럼 조용히 채워진 일상이었습니다.

원하던 자격증을 취득했고, 한국사자격검정능력시험도 필요한 급수에 통과하였습니다.

몸뚱이가 중요한 자산인 사람이기에 하던 운동도 여전히,

매주 목요일에는 주말 준비를 위해 대대적으로 장을 봐서 밑반찬과 몇 가지 요리를 준비하던 일과도 그대로였습니다.

지금은 작은아이가 도서관에서 로봇수업을 듣는 동안 기사노릇을 하며 열람실 한편에 머물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의 하루는

파이팅 넘치게 운동을 마치고, 그 기세를 몰아 프라이팬을 흔들고, 책을 붙잡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일기를 쓰며 우는 날들의 반복이었습니다.




제 삶이 엄마와 가정주부라는 틀 안에 (갇혀)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흔세 살의 제가 마주하고 있는 분명한 현실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가능한 만큼의 자유를 제게 허락하며

어쩌면 누군가의 로망일지도 모르는 평범한 삶을 계속 살아가보겠습니다.


저에게 조용한 응원이 되어 주셨던 몇몇 분들의 손길이 생각납니다.

진심이 묻은 응원에 오래오래 머물렀고, 제 글보다도 여러분들의 댓글을 더 자주 들여다보았습니다.

단 한 분이라도 그 아줌마 어떻게 사나? 궁금하게 생각해 주신다면

생애 첫 '작가'라고 불린 제 지난 시간에 큰 영광이 될 것 같아요.


그저 일기 한 조각 마무리하면서 안녕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의 삶답게,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물러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삼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생각_29)

꼼꼼한 손길이 닿은 액자 속에 자유롭게 그려진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비록 내 삶에 내세울만한 특별함이 없고,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보잘것없이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작품을 그리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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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