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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Aug 09. 2021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여행

여행 속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이병률의 <내 옆에 있는 사람>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믿고 보는 작가가 생긴다. 문학작품, 철학, 미학, 역사에서, 그리고 사회과학에서... 책이나 작가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면 안되는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은 팬덤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행히도 그 믿음이 잘못되어 사라진 경우는 아직 없다. 다행인 것 같다.


이병률의 세 번째 책이다. 하나는 읽기만 했고 다른 하나는 광주를 내려가면서 세 시간 반의 버스길에서 그냥 읽어 버렸다. 그리고 그 책을 누군가에게 줬다. 그 때 책을 덮고 난 다음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세 번째다.


이병률 작가도 여행 산문 여행기행 수필 분야에서는 믿고 보는 작가 중의 하나다. 그냥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지럽게 살아가면서 내가 놓치고 잊어버릴만한 것들을 망각의 저편에 슬그머니 끄집어 내 준다. 그래서 그게 고맙고도 즐겁다. 50의 인생에서 새롭게 알게되는 것보다 잊혀져 가는 것이 많은 것이 당연한데... 어찌 고맙지 않을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읽고 나서 작가가 시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냈다. 난 그냥 여행작가인 줄 알았었는데... 그러고 보니 표현하는 말들이 아주 말랑말랑하다. 우리 같이 논리로만 먹고 설득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과는 어휘부터가 다르고 생각과 표현의 방식이 틀리다. 그래서 맘에 든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풀숲같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여럿보다는 셋, 셋보다는 둘, 그리고 혼자 가는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나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던진다. 내 옆에 누가있지? 여행이란 혼자하는 것이 제 맛인데...


혼자 간 여행을 기억해 본다. 온전히 혼자인 경우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연결선을 끊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즐긴 여행도 있었다. 혼자서 생각하고 과거의 조각을 하나 둘 끄집어 내와 되새김질 하는 것이 좋은 그런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서 밤 하늘과 마주한채 검은 색 도화지 위에 생각을 하나 둘 퍼즐 조각처럼 맞추어 내는 시간이 가능한 건 혼자하는 여행의 참 맛이었다. 그래서 좋은 거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온전히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누군가와 말을 걸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그런 여행... 여행은 그러고 보면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절대적으로 혼자 하는 여행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존재와 실존의 차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몸은 혼자였지만 마음만은 혼자가 아닌 것이 더 쉬운 표현이겠다.


이병률의 여행산문집은 일반 여행에세이와는 좀 다른 면이 많다. 여행의 풍경이 전혀 나오지 않는 여행 산문집이다. 풍경보다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나오고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모르는 두 사람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는 내내 그 화면을 생생히 그려낼 수 있다. 때로는 수채화로 때로는 수묵화로, 가끔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알듯 모를듯한 이미지화된 추상화도 그려낸다.


그러고 보면 이병률 작가는 화가를 해도 잘 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글로 그림을 그린다 할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오랫만에 느낀다. 웬지 모를 아득함도 섞여 있다. 아직 내 마음안에는 누군가를 사랑할 만한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는 감정도 든다. 가족 그리고 나와 인연의 끈을 유지하는 많은 사람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소중함을 깨닫는다.


여러 소절 중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가 새로와 적어본다.


"문득 길을 가다 만나는 찐빵가게에서 솥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같은 것. 사랑은 그런 것. 

호기롭게  사두었다가 오년이 되어도 읽지 못하는 두꺼운 책의 무거운 내음 같은, 사랑은 그런 것,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 샀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의 문양 같은 것, 

머쓱한 오해로 모든 것이 늦어버려 아물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 

실은 미안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돌의 입자처럼 촘촘하지만 실은 헐거운 망사에 불과한 것. 사랑은 그런 것. 

백년 동안을 조금씩 닮고 살았던 돌이 한순간 벼락을 맞아 조각이 돼버리는 그런 것. 

시들어버릴까 걱정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들게 두는 것. 

또 선거철에 거리의 공기와 소음만큼이나 어질어질 한 것. 

흙 위에 놀이를 하려다 그려놓은 선들이 남아있는 저녁의 나머지인 것."


사랑은 닳아해진 구두처럼 낡았지만 내 발에 꼭 맞는 것. 그러면서 새 것을 찾고 언제가는 새 것으로 갈아신지만, 그 낡은 신발이 가장 편한 것. 사랑은 그런 것. 


이런 말로 내 사랑을 서툴게 그려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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