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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Aug 09. 2021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시간여행 이야기

풍경을 느끼고 익숙한 것들을 추억하게 만드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

스마트폰 한 구석에 꼭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은 책들의 목록을 적어두는 습관을 가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것을 메모하는 대신, 어쩌다 다가온 책들의 제목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기위해 적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먹은 채 조그맣게 적어 놓았던 <자전거 여행>을 이제야 끝을 내고 글을 적는다. 흡사 나 자신이 자전거 여행에서 갓 돌아온 듯 느낌이다.


출판사를 옮기는 우여곡절을 알리 만무했기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손에 넣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 났고 내 주변은 시간과의 싸움을 이어나가며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물론이고 책 속의 많은 장소들도 지금은 더 많이 지난 시간 속에서 다시 한 번 몇 겹의 껍질을 벗겨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라져 가는 중에 있는 것들이고 시간과의 싸움을 통해 그 존재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어나가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자전거 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해변 구석구석의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끼며 인간 삶의 단면을 작게 나마 글로 옮긴 적이 있었다. 그 기억마저도 이제는 먼 추억이 되어 그런 사실 조차도 머리 속 한 구석의 공간을  시간에 내어 놓지 않을 수 없었기에, 지금은 그 기억을 아스라히 반추하면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 것이 전부다.  말 그대로 추억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런 추억이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손으로 이끌었고, 기대감? 작가와의 동질감을 은근히 기대했던 터라 자전거 여행의 경험자로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여긴것 같기도 하다.


김훈의 책에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의 머리 속 깊숙히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쩌면 이 세상의 단어가 아닌 것처럼 설명되지 못하는 말들이 많기에, 그의 글들은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고충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깨달음의 느낌표를 머리 속에 적어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에서 그가 가지는 힘은, 바로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관조적 자세'이다. 인간에게서, 자연에게서,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가운데에서 자리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국을 돌며 보아 왔던 것들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라면 나도 그렇겠지만 작가 역시 달갑지 않은 여행의 소재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라져 가는 갯벌, 산골 마을의 풍경, 한강에 자리잡은 정다산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 염전을 삶터로 살아가는 염부의 이야기들 그리고 멀리 날아 목숨을 이어가는 도요새와 저어새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은 지나가거나 지나친, 시간의 흐름에 자리를 내어 준 추억 속의 것들이다. 벌써 과거의 것으로 여기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 우리 곁에서 영향을 주었기에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런 아쉬움을 작가는 이 땅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돌아보면서 감회를 적을 뿐이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아쉬움으로, 때로는 분노함으로... 


여행 에세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먹먹한 가슴 한 켠을 만들어 내며 마음을 채우기 보다는 욕심과 공상을 비워내는 탁월한 글솜씨에 매료된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표도 이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언젠가 서해의 일몰을 뒤로 놓고 자전거를 지치는 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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