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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ug 25. 2021

불안,강박,우울 처방 후기

숨 잘 쉬기


'정신과'라는 이름은 사실 우리에게 어느정도의 심리적 장벽을 일으킨다. 사실 꼭 우리가 피를 토하고 심각한 지경이 되어야만 동네 호흡기 내과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듯이, 사실 정신과도 그저 내가 신체에, 정신에 불편을 느끼고 힘들면 방문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전에도 강박이나 불안 등에 대해 밝혔었지만, 병원에서 '하지만 방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두 가지 이유를 떠올렸다.


1. 언제부터인가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에 들기 어려운 점, 일을 하면서 항상 긴장된 상태로 지내다보니 꿈에서조차 논리정연함이나 제대로 말할 것을 스스로 요구하게 되는 점. 어떤 계기에 의해 화가 필요 이상으로 날 때가 많고 그에 수반되는 신체적 반응(손 떨림, 목 잠김, 땀이 흐르거나 손이 차가워지는 것)이 지나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오랫동안 스스로 생각해왔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불안이나 강박 등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며 무엇보다 내 정신과 신체를 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2. 주변에 알아보고, 맨스플레인을 일삼거나 젊은 여성 환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병원을 추천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계기가 가장 직접적이다. (그저 좋은 병원을 추천받았다고 말했지만)


1의 이유를 생각하던 차에 2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용실이던 택시던 대면 서비스를 이용할 땐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편함을 겪게 되기 때문에 사실 2번은 굉장한 진입장벽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해야한다면 더더욱.


자나팜과 인데놀을 처방받았다. 불안장애나 강박장애, 나아가 우울증까지 사실상 신체에 생리적으로 개입하는 매커니즘은 어느정도 비슷한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로토닌의 수치를 높이고 부교감 작용-GABA-등을 높인다던가) 일반적으로 이렇게 많이들 처방을 받는다고 한다. 다만 항우울제의 경우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좀 장기적으로 걸리고, 항불안제 등은 단기적 효과를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처방이 나갈 것이라고 설명받았다. 


나의 경우에는 심리적 트라우마가 일화적으로 드러난다기보다는 성격적 경향이 업무 환경에 따라 과도하게 강화된 경우라 특별히 상담 등을 진행하진 않았다. 내가 놓여있는 상황에 비해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스스로 받는 성향이 문제인 것이기 때문에.


약을 처방받고 일주일 정도는 정말 약물을 찬양했다. 뭔가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된 느낌이고, 사람에 대한 감정도 많이 누그러진(다기보단 신경을 덜 쓰게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안함에 계속해서 여러 정보를 찾아보는 강박적인(가만히 있을 때나 집중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의 불안감을 대면하기 괴로워 일부러 이런저런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찾아봄으로서 외면하는) 행동도 빈도가 줄어 오히려 책상에 앉아 집중력 있게 작업 등을 할 수 있었다. 대신 잠을 굉장히 많이 잤는데 다행이도 그게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벼운 운동을 계속 병행하였다.


그 다음주에는 약을 다시 조금 약하게 처방을 받았지만 사실상 비슷한 내역으로 처방을 받았는데 하필 신체 건강이 나빠져서 꾸준히 하던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운동뿐 아니라 다른 일이나 학습 등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루 또 다시 일 생각 등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밤에 잠을 늦게까지 못 자는 일이 반복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햇빛을 못보게 된 것도, 신체 활동도 하지 못하게 되거나 좀 더 고통스러움을 느끼는 감각이 심화된 것도 그 몫을 하고 있는듯하다. 몸살 때문인지 약과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식욕부진이 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고 약 때문에 겨우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다.


아직은 짧은 기간밖에 겪어보지 못해 온전히 후기라고 말 하긴 그렇지만 역시나 약의 도움을 받되, 동시에 운동이나 환경 변화, 생활 습관 개선 등이 함께 되어야만 그 치료 효과를 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땐, 나 스스로도 자꾸 해내지 못한 것들이나 내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서 보게 되는 경향이 강화된다. 그럴 때는 작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해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때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목표는 바로 숨쉬기이다. 농담이 아니고, 숨을 쉰다는 건 대단한 일이고 숨을 잘 쉰다는 건, 살아있다는 건 중요하다. 들숨과 날숨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면서 차분하게 숨을 잘 쉬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xjp15snSw_k

[영상- Ariana Grande, 'Breathin' -기몽초 채널(가사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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