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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바로 너인가? 나인가?

돼지가 남기고 간 눈부신 선물

by 이열하




1. 울림을 준 책 문장


"그는 자신이 돼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훌륭한 양의 모범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분이 높고 고상한 돼지일수록 이런 착각을 잘한다."

-최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중에서




2. 마음의 울림


저 시문구를 마주한 순간 나도 돼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돼지가 아니고 너만 돼지라고 착각의 늪에 빠지는 것 같다. 나도 그랬듯이 말이다.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은 사실은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만히 스쳐지나온 나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랬다. 그리고 옛사랑의 상처로 가슴 쓰라렸던 수많은 날들 중에 나보다는 너를 탓했던 것 같다. 돼지를 못 알아본 나의 안목도 결국은 돼지와 같은 눈높이를 가진 같은 돼지였다. 이제서 나는 어린 시절 돼지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돼지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랬다고 위로하고 시의 언어로 돼지가 남기고 간 눈부신 선물을 이야기하고 싶다.




돼지사랑이미지.jpg


3. 내게로 다가온 시(자작시)


돼지들의 사랑을 알아?


어느 날

바다의 신비를 닮아 반짝거리는 진주 한 알에게

돼지가 성큼성큼!

그 눈빛은 서로의 가슴을 환하게 비추었고

마음속 수많은 갈래의 길도 볼 수 있게 해 주었지


그 수많은 진주들 중에 그 진주만의 의미와 감미를 알아봐 주는 돼지인가?

운명 같은 그 돼지에게 그 진주의 모든 것이 스며들었고

따뜻했던 손길과 심장은 얼마못가

오만한 눈길을 더하여 차가운 손길과 심장으로 변했지

계산된 친절함과 다정함! 배려심에 잠시 농락당한 것인가?


어제는 키스를 오늘은 헤어짐을

어제는 너만 사랑해! 오늘은 다른 여자 사랑해!

어제는 가지 마! 오늘은 잘 가!

자동차의 소모품처럼 필요에 따라 버려지고 교체되는

인스턴트식 사랑!

가십거리로 잘근잘근 씹혀서 버려지는 그 진주알!

또 가련한 척! 술렁거리는 그리움 그 자체라며

다시 다가오지만 달콤한 로맨스는 저만치 또 달아났네


한 때는 내 심장을 이끄는 그 끌림 따라

나의 눈동자가 향했던 그 모든 곳!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네

자책하는 내 마음속에 원망이라는 찌꺼기만 남았을 뿐!

돼지는 너인가? 나인가?


그 돼지는

내 영혼에 감미와 의미를 주었던가?

내게 진실의 눈으로 말했던가?

사랑보다! 마음보다! 욕정으로만 만나려고 했던가?

영혼의 언어 아닌 육체의 언어에만 기대었던가?

내가 가고자 하는 꿈의 길을 지지해 주었던가?

나를 위해 너의 시간, 돈을 사용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던가?


아하! 그런데 몰랐구나!

너가 돼지이고 나도 돼지였다는 것을

사실은 나도 진주를 품은 돼지였다는 것을~


사랑이 고프고, 손길이 고프고, 정이 고프고,

다정함이 고프고, 따스한 눈길이 고프더라도

아무것으로나 허기와 온기를 채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시간이 흘러 이제라도

허울뿐인 그림자를 꿰뚫어 볼 지혜의 눈을 뜨게 했으니

이 얼마나 돼지가 남기고 간 눈부신 선물인가?




4. 마음의 깨달음


이별의 아픔 속에서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조지 앨리엇-


사랑의 또 다른 단면은 이별이다.

사람도 사랑도 모든 건 변한다는 것을 나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경험 속에서는 믿어졌다. '우리는 달라! 너는 아니야!'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사랑이라 믿었던 달콤함과 큰 의미로 하나 되었던 그런 우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별의 경험으로 사랑의 얕은 깊이를 알았고 미처 채우지 못한 깊이는 나를 집중하는 시간으로 채워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채운 다음에 류시화시인이 말한 것처럼 다시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어차피 지나가버릴 일에 나 자신을 소모하지 말자!

텅 빈 내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채울 일들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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