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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기 Jul 16. 2024

‘제망치아가(祭亡齒牙歌)’

50년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쉬이 잊히다니. 어찌 보면 또 허망하다.

  50년가량 사용한 어금니를 뺐다.

돌아가신 엄마께 내가 영구치가 언제 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으신 울 엄마께서 막내딸 영구치가 언제 났는지 기억할 리 만무하니

대강 50여 년으로 퉁치련다.


 국민학교 2~3학년 때 빵만 먹어도 치아가 툭툭 빠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담 50년은 채 안될 것 같긴 하다.


 나에게 맛난 음식 맛보게 해 주고

온갖 영양분을 제공해 주어 무럭무럭을 넘어 우량하게 키워 준 나의 어금니!


자세히 찾아보니 위는 제1대구치. 아래는 제2대구치 총 2개를 발치했다.

앞으로 5개는 상황을 보고 순차적으로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발치할 때 제법 아팠다. 뽑을 때도 아프지만 마취 주사를 서너 곳에 맞을 때가 찌릿했다.

돌아오는 길 주의사항대로 솜뭉치를 악 다물고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다.

평소 같으면 ‘이 뽑았다. 마취가 덜 깨 얼얼하다’ 등 친구나 남편에게 수다작렬이었을 텐데

폰으로 <이 발치 했음. 말하기 힘듦. 집으로 바로 갈 예정임>이라고 메시지만 보냈다.

치아 빠진 자리에 솜뭉치를 넣어 놔서 말하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내 몸에서 나를 위해 일한 이를 뺐으니 몸살이 나고 아파야 정상이다.

이를 뽑으러 갈 땐 ‘발치한 이를 보여 달라’고 할까 혼자 야심 찬 생각도 했는데 막상 무섭고 힘들어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치과에도 프로세스가 있을 테니~


  돌아오는 길 잠시 뺀 이에게 고맙다고, 잊지 않겠다고 ‘제망매가’가 대신 ‘제망치아가’라도 읊어줘야 할 것 같이 메모장에 몇 줄 적었다.


‘제망치아가(祭亡齒牙歌)’


오늘 아픈 고통은 널 보낸 미안함으로 참아줄게

나에게 맛난 음식 맛보게 해 주고

온갖 영양분 넣어줘서 고마워


늘 옆에 있어 고마움도 모르고 챙기지 못해 미안해

피곤하다고 양치 안 하고 잔 적도 제법 있고

3분을 채 못 채우고 양치를 끝낸 적도 많아.


먹고 싶은 욕망에 너를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아 미안해

평생 거기 있을 줄 알고 너무 방심했나 봐.

.

너 대신 오게 될 인공치아에겐 너에게 못한 거 대신 잘 챙겨줄게 


어느 치과 의료폐기물로 처리될 나의 어금니야

발치한 통증 때문에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보내 미안해.

세상 많고 많은 주인 중에 내 입안에 자리 잡고 나와 같이 한평생 산 어금니야.

소임을 다한 너에게 감사장이라고 주고 싶구나.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하데이~

그래도 우리가 50여 년 한 몸이었던 거 잊지 않을게.

너도 잊지 말아 다오.

잘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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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써 오던 어금니 뽑고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통증은 가시고

빈 자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빠진 이 부분이 자꾸 신경 쓰이는 정도다.

50년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쉬이 잊히다니. 어찌 보면 또 허망하다.

허망한 마음을 글자 몇 개로 대신해 본다. 



지난 토요일 인천대공원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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