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밥 줘!

쿠팡에서 장보기를 하다가 과거로 회귀하다.

by 따오기

쿠*을 클릭했다.

이것저것 먹거리 재료를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무슨 일인지 어제오늘 닭볶음탕이 먹고 싶어 생닭도 주문했다.

닭볶음탕은 특별한 요리솜씨가 필요하지 않은 메뉴라 재료만 잘 넣고

간만 잘하면 중간 이상은 간다.

생닭, 감자, 양파, 당근, 감자, 닭볶음탕을 하려니 필요한 부재료도 포함했다.

사실 요즘 거의 식생활을 외부에서 공수하다 보니 기본 재료도 거의 없다.


냉장고에 분명 뭔가가 그득하긴 한 데 마땅히 먹을 건 없다.

내일이 휴일이니 간만에 집에서 집밥을 만들어 볼 요량이다.

간만에 세끼를 해결하려니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다.


요즘은 슈퍼에 가지 않아도 손꾸락 몇 번만 움직이면 재료가 문 앞까지 배달되어 오는 세상이다.

내가 홈쇼핑도 좋아하고 오프라인 쇼핑도 좋아하지만

웬만하면 생식품은 집 근처 마트에서 사는 편인데(직접 보고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사는 편)

미리 주문하지 못한 상황에선 쿠팡이 요긴하긴 요긴하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쿠팡맨들이 수고하는 가 보다.


내일 아침 배송되어 있는 먹거리들이 기대된다.

간만에 요리솜씨를 부려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를 각인시켜야겠다.

'라테(때)는 말이야. 다 직접 요리했지 말이야'

요즘이야 반찬집. 밀키트. 포장도 많이 하지만 말이야.


특히나 일이 바빠지고, 일터가 멀어진 후부터는 재래시장이 가까운 남편이 장을 봐 오는 횟수가 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림 문외한이던 그가 점점 살림남으로 변신하고 있다.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 '먹고살아야 해서'라고 대꾸하는 그가 얼마나 대견하고 안쓰럽던지.

그래도 노후에 차려주는 밥만 먹으려는 남편들보다 훨씬 현명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배고프면 해 먹고

필요하면 사 오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사는 게 인생사 아니겠나.

사실 과거에 눈만 뜨면 '밥 줘'라고 하는 통에 몇 번이나 싸웠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이종환. 최유라의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소개해 '밥 줘'로 전파를 다 탔을까?


나는 주로 밥을 하고,

주로 밥 달라고 주문하던 그와 내가 점점 역할이 바뀌고 있다.

점점 남녀의 역할이 혼종 되고 역전되는 세상이다.

그의 말처럼 살아야 하니까.

살다 보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돕고 살아도 벅찬 세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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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밥이 뭐길래...(그 남자 그 여자. 2- 밥 줘!)

05.07.18


그 남자와 싸웠다. 또 싸웠다.
이번에도 지난번 같이 말하기도 창피한 사소한 사건으로
또 싸우고 말았다. 아니, 자다 말고 일방적으로 당했다.

일요일 오전 9시에 '밥 줘'라고 소리치는 남자에게
'일요일마다 왜 그러냐, 잠 좀 자자'라고 했다가 당했다.
일방적으로 당했다.

평일엔 출근해야 하니까 본능적으로 일찍 일어나지만
일요일만은 좀 늦게까지 자고 싶은데
게다가 내가 매일 아침을 굶기는 것도 아닌데
그 남자는 눈만 뜨면 밥을 먹어야 하는지
자기가 먼저 눈을 뜨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즉시 밥을 찾는다.
체질도 참 특이하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휴일이라고 곤히 주무시는 마나님 깨워 밥 달라고 하는지~
통 시대관념이라곤 없는 똥배짱 남자다.
그게 다 그렇게 밥을 소중히 여기는 특이한 밥심에서 나온 건지는 몰라도.
우리 집 그 남자는 왜 밥심까지 발달해 가지고서는...

밥심은 아줌마 힘이라 했거늘~

암튼 그래서 당했다.

게다가 성질만 나면 소리부터 질러대는 그 남자.
베개라도 던져야 성이 풀리는 그 남자.

난 늘 그 남자가 성질을 내면 '왜 저러고 살까'하는 기막힌 표정으로
야유하듯 대처하곤 한다.
그러면 더 성질이 나는지 더더욱 흥분하고 난리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동안 기가 막혀 바라보다가
‘그래~ 해 볼 테면 해 봐라, 내가 자기가 던진 물건 절대 치우나 봐라’식으로
속으론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겉으론 태연한 척하며 일보 후퇴한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그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고
현관문을 몇 차례 들락날락하다가는
자기가 던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놓는다.
그래 자기가 봐도 창피하긴 하겠지
애들 있는데 체신없어 뵈긴 했겠지

그렇게 전쟁이 휴전되고
난, 기가 막혀서 금방이라도 속 터져 죽을 것 같지만
아무런 대항도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썰렁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피 터지는 전쟁 중엔 침묵이 금인 것 같아서…

그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렇게 치사한 일로 떠들썩하게 싸울 때마다
그와 같이 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살려면, 매번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치사한 일로 싸움이나 하고 살려면

이쯤에서 그만두어도 되는데...
그럼에도 난 그에게 결정적인 선언도 하지 못한다.
일테면 '가출'이나 '이혼선언'같은 거 말이다.

흥분한 상태에서의 말 한마디가
자칫하단 내 인생의 큰 오류를 낳을지도 모르니까.
상대를 가장 열받게 하는 가장 치사한 방법이지만
열받아 있는 사람에겐 열을 식게 해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아 그저 싸늘한 침묵만 지킬 뿐이다.
'떵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옛말을 떠올리면서...

단. 끼니가 되면 밥은 준다.
먹으라는 말은 안 하지만 밥상에 수저는 놓아둔다.

애들이 알아서 드시라고 하면 그래도 꾸역꾸역 먹으러 온다.
치사하지도 않은지 '밥 달라'라고 성질낸 사람이

'먹으란다'라고 꾸역꾸역 먹는 건 또 뭔지.


암튼 이 냉전이 며칠을 갈지 모르겠다.
일단 먼저 말을 걸고 싶지는 않다.
매번 이러다 흐지부지되고
또 그러고~

그게 싫다.

유순한 듯하면서 고집 세고
고집 센 듯하면서 보기보다 우유부단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잘하는 일이라곤 오로지 '밥 먹기, 술 마시기, 담배 피우기'뿐인 것 같은
그 남자랑 살아온 지난 일들을 떠올려 보노라니 모조리 억울하고 분하고 괘씸하고...

그도 그럴까?
그래~ 어쩜 그도 나와 같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지구는 자기중심으로 도는 거니까.
그도 억울하긴 억울할 거다.

평일엔 아무런 대꾸 없이 꼬박꼬박 국 끓여대고
따뜻한 밥 해대다가 일요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만사 제쳐두고 잠만 자고 있는 게으른 마누라랑 산다는 게
눈만 뜨면 밥부터 먹어야 하는 특이체질의 그 남자에겐
그 무엇보다 끔찍하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엄청 원망스럽고 창피하기도 할 거다.
'왜 감정통제가 안 되지'
'왜 또 던졌지'
'왜… 왜' 하면서 제어 안 되는 자신이 무척 원망스럽고 쪽팔릴 거다.
내 그 속에 안 들어가 봤지만 알 건 다 안다.

그나저나 애들이 불쌍하다.
하루종일 냉전 중인 부모 틈 사이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기가 죽어 있는 나의 애들이.

그래서, 그게 안타까워 이러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평생 이러고 살아 질지도….

아~ 그러고 보니 앞으로는 토요일 저녁 밥을 산더미처럼 그득 해 둬야겠다.
솥단지 가득 밥을 채워 놓고
국도 세끼 식사분 정도 쟁여 놓으면 화가 덜 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밥이 뭐길래
그 밥 먹고 살려고 평생을 낑낑대고
또 밥 먹고 살 만하면
'네가 하니 내가 하니'하며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건지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활 한 두해 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밥이 뭐길래.

근데 왜 갑자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 걸까?
눈치도 없이 이 시국에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내 온다.




이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 다시 한번 올려 본다.

18년 전 일이니 지금 보면 완전 남편을 폭군으로 그렸지만 그땐 그렇게 살았다.


지금은 스스로 장도 봐 오고, 요리도 하고, 성질도 많이 죽었다.

특히 아침에 '밥 줘'라고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챙겨 먹기 시작한 지도 제법 됐다.

같이 퇴근하고 오면 먼저 주방으로 가는 날도 많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 담배를 건강상 이유로 멀리 한지도 십 년이 더 됐다. ㅠ.ㅠ


그러고 보니 세월이 흐른 것처럼 우리도 많이 변했다.

아니 늙은 건지도...


생활을 소재로 글을 쓰다 보니 변화한 일상과 그 시대를 읽게 된다.


'여보 미안해! 자꾸 자기 흉보는 과거를 소환해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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