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던 걸 잊은채 딴짓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주방에 들어오는 걸 보고서야 생각이 났다.
“커피포트에 끓인 물 좀 주머니에 담아줘”라고 부탁하고 무심코 TV를 보는데
그 남자의 다정하고 명확한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꼭~ 주.머.니에 잘 담아 줄게!”
“어? 주머니? 내가 주머니라고 했어?”(듣다보니 이상해서)
“응~”(빙긋 웃으며)
“이젠 다른 단어를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네. 주전자를 주머니라고 하다니? ㅎㅎㅎ”
그녀는 자신이 왜 '주전자를 뜬금없이 주머니라고 했을까?' 하는 황당함과
단어를 잘못 말한 걸 알고도 주전자에 물을 잘 담아 준 그 상황이 얼마나 웃기고 오묘한지
집이 떠나갈 듯 크게 웃었다.
^ 주전자를 주머니라고 하다니 ~------------ㅋㅋ--ㅋㅋ------세상에-----만상에-^
그녀의 주특기인 오버액션을 하면서~~^^.
사실 며칠 전부터 그의 말투 때문에 미묘한 신경전 중이었는데,
그녀의 민망한 건망증 때문에 언제 그랬냐는 듯 순간 화해무드로 돌변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각자 방에 있던 아이들도 웃음소리가 소란스러운지 문을 열고 “엄마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다.
“아니. 이제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아빠가 다 알아 들으신다. 너무 오래 같이 살았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동병상련인지, 잘못된 단어를 말해도(개*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사실 생활양식이나 행동반경이 비슷하니 충분히 유추 가능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번엔 또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뿐 아나라 평소에도 '그 거. 그 거 말이야!' 라고하면
'아 그 거!'하고 동일한 단어를 떠올리긴 했다.
'거시기가 다 거시기'이듯 '그 거' 하면 다 통하는 우리만의 언어 소통방법이랄까?
그 부부는 요즘 비슷한 증세로 서로를 위로하고 맞춰가며 살아간다.
‘어쩌겠어~, 그래도 나의 실수를 바로 인지하는 상황이니 치매는 아니겠지’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건망증은 핵심을 설명하거나 객관식으로 물어보면 잊어 버린 걸 바로 아는 경우고
치매는 잊어버린 상황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암튼 늙을수록 옆에 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점점 실감 나는 요즘이다.
'미우나 고우나 부부가 제일'이라는 옛말이 절감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