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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청소기 돌리기

계속해 오던걸 바꾸는 것의 어려움

by 민들레

로봇청소기도 내 맘 같지 않아 직접 청소기를 돌리는 게 아직은 편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청소의 일생을 보내면서 청소기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청소를 하는 나의 오른손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너무나 익숙하게 오른손으로 청소기를 돌리다가 문득 내가 청소기를 열심히 매일매일 돌린 지가 벌써 20년이 되어 간다는 사실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왼손도 써 보자고 시도는 했으나 그냥 익숙하지 않고 불편해서 넘긴 게 몇 번째인데 오늘은 달랐다.

20년이란 시간의 체감을 떠올린 것도 그렇고 앞으로도 20년은 더 청소할 것 같은데 지금부터 해서 익숙해지면 20년은 왼손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왼손으로 청소기를 돌리는데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청소기를 돌리는 일은 그리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 아님에도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어주지 않는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디테일한 움직임이 필요한 왼손글씨 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도전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라고 생각하며 문득 이 익숙함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익숙한 대로 하는 것이 각각 얼마나 어렵고 쉬운 일인가 싶어졌다.

가정 내에서의 할 일이나 사회에서의 할 일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드는데 성실하다고 평판이 있는 사람이 계속 성실함을 유지하는 것과 능력 없다고 말 듣던 사람이 굉장한 프로젝트를 성공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궂은일 다 하는 며느리로 한번 각인이 되면 그것을 빠져나오는 것 또한 매우 어렵고, 못하던 며느리가 잘하면 칭찬 듣는다는 것도 같은 꼴로 쉽지 않고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대부분 못할 것이거나 이유 불문하고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여러 환경에서 무수리의 역할을 자처하던 내가 앞으로 그 역할을 벗어날 수 있으려나? 생각해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일을 하는 손 위치를 하나 바꾸는 것도 이렇게 어렵고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한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일이야 얼마나 어렵겠나.

아... 난 그저 맘 편히 이곳저곳에서 무수리 캐릭터를 이어갈 것인가 반란을 한번 일으켜 선을 다시 그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일단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남'은 재쳐두고... 내가 어찌해 볼만한 왼손으로 청소하는 것부터 도전하기로 이번엔 단단히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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