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조용히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무수한 바위들을 넘어 흐른다.
장거리 일정이 갑자기 결정되었다.
있던 일정은 부랴부랴 사전에 조율하고 가지 않았을 길을, 일어나지 않을 시간에 일어나서 움직였다.
해돋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매일매일이 똑같은데 1월 1일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으로 지내는 터라 더더군다나 송구영신예배의 마무리까지 하고 새벽 3시에 잠을 자면 늘 1월 1일은 평소보다 늦은 9시에 기상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일출과는 거리가 있던 차에 마흔 중반이 되어 의도치 않은 새벽출발일정으로 나는 일출을 보게 되었다.
창문 밖 밤새 영하권으로 얼어있던 세상이 붉은빛으로 열리는 하늘을 보는 경험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해 본 경험이었다. 햇볕의 온도는 느껴지지 않고 입김이 나오는 날씨에 정말 뜨거울 것 같은 붉디붉은 해가 뜨는 것. 아마도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위해 해를 보러 가는 것이겠구나 싶은 그런 몽글몽글한 새벽감성.
새벽에 출발. 도착해서 점심 먹고 다시 출발하여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 길고 긴 이동의 여정. 하루 걸음수가 총 3천 걸음도 안 되게 차에서만 이동하는 지난한 하루의 반절은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훌륭한 경험이었다.
이번 일정의 전날까지 마음이 시장통 같았다. 굳이 이 먼 길을 가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확답이 없었고 다녀온 뒤의 피곤함과 미뤄질 일정들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이 시끌시끌 좀처럼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지키기 어렵다는 "마음". 가기 싫다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녀오니 한결 편해졌다. 우리가 간다고 달라질 거 하나 없는 마이너스의 여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맘 편한 거 하나 생각하면 무엇으로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니 엄청난 이득이 있는 여정이 되었다. 평생 처음 본 일출도 엄청난 선물이 되었고 말이다.
의도한 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아서 감사한 일도 적지 않으니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 수 있다.
이번 이동은 그래서 시작은 시끄러웠으나 마무리는 상쾌한. 마치 운동하고 난 뒤의, 시험을 보고 난 뒤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기도한들 복권을 사지 않으면 당첨시켜 주실 수 없는 것처럼 깜짝 선물은 의도치 않은 일정에서 생긴다는 것도 깨닫는 시간이었다.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도 사실 너무나 많은 바위들을 부딪쳐가며 넘어가는 것이라고 엄청 시끄럽던 나의 마음도 바위 하나 넘어가는 것처럼 다시 잘 흘러가기를 다시 평안하여 흐르기를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