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들을 보며 반성하기
주방창문에서 보이는 나무는 내 시야에서는 딱 보기 좋은 내 키 만한 높이이다. 비탈길에 자리한 나무는 내가 집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사실 조금 더 큰 키이지만 난 늘 그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내가 보는 위치의 그 아담해 보이는 사이즈의 나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나무를 어떤 사이즈로 인식을 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새들은 신나게 그 나무에 오손도손 앉아있다.
아침마다 식사 준비를 하며 그 새들을 탐조할 수 있는 것도 단독주택에서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나만 보기 아쉬어서 신랑에게 3d 프린터로 모이통을 출력해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밥을 주면 새들이 더 많이 모일테니 아이들도 새 관찰을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시작했는데 그 마음이 시드는 데 고작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이 녀석들은 먹으면서 싸더라는 사실.
보기만 할 때는 주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니 짹짹 소리도 이쁘게 들렸는데 밥을 주면서 더 많은 새가 모여서 똥을 싸기 시작하니 이건 창문을 열면 보이는 하얀 얼룩들에 아침부터 기분이 다운되는 것이다.
뭐 그 위치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그저 나무 밑이거나 풀밭이었으면 또 달랐겠지만 볕 잘 드는 빨래대가 있는지라 매일 빨래를 널 때마다 똥을 치워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아무리 새 아이큐라는 말을 한다지만 어찌 먹는 장소에 바로 싸는지 사방이 풀밭인데 말이다.
하긴 쓰다 보니 답이 나오긴 한다. 내가 풀밭 쪽에 모이통을 놓아두면 되는 거였는데 알다시피 사방이 풀밭인데 이제야 그 답을 알아내다니 참새만 새 아이큐가 아닌가 보다.
전에 그 일로 새에게 놀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진다.
일장연설을 늘여놓고 뒤돌아서는 순간 내 실수를 깨닫게 되었다면 이 낯부끄러움은 어디에 숨길수도 없었을 테다.
오늘따라 참새들이 비슷한 높이에 일렬로 앉아서 짹짹 거린다.
마음이 찔려서인가 혹시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지 주의 깊게 관찰해 본다.
아 어쩌면 저 사람은 매일 이 나무를 자기가 보는 눈높이에서만 본다고 생각보다 높은 나무라는 걸 우리만 안다고 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 사람들도 집이라는 공간에서 먹고 싸고 다 하면서 우리더러 뭐라 한다고 사람머리는 참 나쁘다고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