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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Nov 20. 2024

무청을 널어본다

구멍이 송송 바람이 숭숭

무 15개 배추 20 포기를 심어 보았다.

약을 주지 않은 관계로 배춧잎도 무 잎사귀도 구멍이 송송.

과연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동안 배추벌레는 살이 쪘고 그 외의 오가는 벌레들도 살을 찌웠다.

더 이상의 고민은 벌레들만 배 불리는 것!

마음을 먹고 무를 수확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무의 모양새는 분명 일반무를 심었는데 알타리 수준의 귀여운 미니 무가 나왔다.

그 와중에도 몇 개의 기특한 무들은 큰 인삼인양 손바닥보다 큰 사이즈로 자라기도 했고 그나마 좀 먹을만한 사이즈다 싶어서 무청을 정리하다 보면 무에 바람이 숭숭 들어가서 먹을 수가 없다.

총 8개의 무를 뽑아 3개를 건졌다. 헛웃음이 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밭으로 돌아가야 하는 5개의 무를 보며 그래 뭐 먹어서 입속으로 사라지나 밭에서 거름 되나 다 좋은 일이다 생각한다. 반타작도 못한 게으른 농부는 그렇게 변명하며 몇 개 건진 무청을 널었다.

며칠 전 전지해서 깨끗해진 매실나무에 무청을 널어두니 그저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무청을 먹든 못 먹든 어른들이 시골스럽다거나 정겹다고 하는 그런 느낌을 나도 받았다.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무를 뽑아서 보낸 지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아마 1개는 먹을 수 있었거나 아님 모두를 버려야 했을 상태의 무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내 멘토 YS선생님 죄송. 저도 무를 처음 뽑은 거라 몰랐어요. 이번에는 엄마가 선별해 줘서 버린 거랍니다.

내년엔 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나눠 먹도록 해요)


이사 온 지 5년 차, 농업경영인 등록도 5년 차.

올해 처음 고구마순도 뜯어먹고, 무청도 널어본다.

아마 내년엔 조금 더 농사를 알아가는 부분이 생기겠지.

몇십 년 하신 분들의 농사를 눈동냥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유튜브가 알려주는 농사법으로 버텨온 5년이지만

이제야 조금 스케줄을 맞춰 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무청 4개 널어두고 왠지 본격 농사꾼이 된 듯한 이 기분을 몰래 혼자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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