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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Nov 27. 2024

늘 그곳에 있다.

내가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된다.

학교 앞에 살다 보니 아이들 등하교 때 창문에서 눈으로만 배웅해도 충분하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건너는 아이들을 안전지킴이 선생님이 맞이해 주시는 모습과 신나서 교문 안으로 뛰어가는 모습까지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앞에 살면서 학교 안을 들어가 볼 일이 생기지 않는데 며칠 전 막내 반 친구 엄마가 하교 후 자기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해서 학교 안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붉게 타오르고 있는 유치원 앞 단풍나무를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첫째도 이 학교를 다니고 막내는 이곳 유치원 출신이니 저 예쁜 나무를 내가 몰랐던 게 아니다.

분명 처음에 볼 때는 감탄했던 나무였는데 그게 어느새 시들해졌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곳에 멋진 나무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던 거였다.  

이 멋진 단풍나무를 몇년간 까맣게 잊고 지냈다니 싶어 나의 무심함을 탓하다가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퇴근길에 쌍무지개를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마트에 들러서 나오는 길에 목격했던 엄청나게 큰 쌍무지개였는데 밝은 하늘에 그려진 그 멋진 그림 같던 쌍무지개를 나만 발견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소리를 칠 수도 없고 일상처럼 무심코 무지개를 등지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뒤 좀 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순간 너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이 멋진 무지개가 뜬걸 아무도 모른다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무리 멋진 무지개라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지개가 없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단풍나무가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금 소환했다.

“네가 그렇게 답답해하던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너야. 난 늘 여기 있었는데 넌 왜 날 못 보니?”

나처럼 답답했을 나무가 한 소리 해 주는 듯했다.

쌍무지개도 그날 그곳에 있었고, 단풍나무도 지금 여기에 있었다. 

쌍무지개는 내가 보고 감탄했고, 단풍나무는 내가 보지 않고 감탄하지 않았을 뿐이다.


붉은 단풍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누리고 살라고, 네가 직접 봐야 한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잘 누리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사느라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지. 살기만 하지 말아야지 마음도 먹어본다.

아...단풍이 나에게 말해주는건 자신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더 잘 살펴보라는 충고일수도 있겠다.

후다닥 단풍나무에게 인사하고 아이들을 향해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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