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흙길도 나란히 걸으면 좋은 것을
영하의 날씨인데 바람이 불지 않으니 체감상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 따뜻한 겨울날씨였다.
정말 더운 여름에도 해의 힘을 체감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추운 날 또한 햇볕이 얼마나 따뜻한지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하긴 여름에는 해를 피해 숨게 되는 상황이니 햇볕의 진가를 오롯이 느끼는 것은 겨울인듯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넓디넓은 산책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매해 핑크뮬리며 코스모스며 메밀이며 꽃밭이 장관을 이루는데 항상 누군가의 사진으로만 보다가 오늘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 방문해 보았다.
열심히 가꾸었을 꽃은 모두 사라졌고 여기저기 억새들과 잡초들마저 힘을 잃고 한 방향으로 누워 쓰러진 모습이 마치 저기 어딘가에서 열심히 시작해서 채 고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춰버린 풀전사들이 쓰러진듯하게 보였다. 눈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그저 햇볕이 따뜻한 것 외에는 광활하기만 한 흙길을 걸으면서 신랑에게 말했다.
"남들은 여기 사진 찍으러 오고 시에서도 계절마다 엄청나게 꽃으로 가꿔 두는데 우리는 참 정말 아무것도 볼 것 없이 황량해진 상태에서 산책을 하네 참 특이한 사람들이야"
"원래 산책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해야 제맛이야"라고 받아치는 신랑과 그저 눈만 있으면 신나는 애들하고 산책을 하다 보니 진짜 꽃길이 아니어도 좋았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고 얼어있는 길에서는 한 발로 미끄럼도 타면서 신이 났고 사람이 없는 산책길이라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편안하게 걷기만 해도 되었다. 정말 걷기만 해도 되는 길이었다.
우리처럼 한가로운 산책을 즐기러 온 대형견도 소형견도 반가웠고 혼자서 산책 나왔다가 막내 아이가 쫓아가자 풀숲으로 도망가버린 고라니도 반가웠다.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겨울 산책 오늘도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은 소확행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