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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별일인가

조용한 생일 아무 일 없는 것이 감사한 일상

by 민들레

어제저녁 막내아들이 뭔가 발진처럼 배 근처에 올라오면서 가렵다고 했다.

전에도 한두 번 그런 적이 있던 터라.

로션을 발라주고 기다려 보자 했는데 아이가 자꾸 혼자 방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자기 몸을 확인하더니 어느 순간 "엄마 나 입술이 붓는 것 같아"하며 나에게 오는 거다.

아이의 입술은 과하게 필러 맞은 사람의 입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신랑에게 말했다.

발진은 그럴 수 있다 싶은데 입술이 부풀어 오르는 거 보니 어쩔까 싶다고 그때 시간이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신랑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아이랑 병원 응급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집에서 대기하고 신랑 혼자 막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면서 전화를 주었는데 마침 소아과진료를 12시까지 받을 수 있단다.

의대 증원 이슈로 한동안 모든 병원의 진료가 엉망이 되었음을 접하던 상황에 이렇게 큰 어려움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상황이 나아졌나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는 항히스타민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11시에 집에 돌아왔다. 주사를 맞을 때는 안 아팠는데 오는 내내 엉덩이가 아팠다며 밴드를 떼어달라고 엉덩이를 보여줬는데 양쪽 엉덩이에 사이좋게 한방씩 주사를 맞았는지 밴드도 양쪽에 붙어있었다.

입술은 조금 가라앉았고 배에 있던 발진은 다 사라졌고 아이는 피곤하다며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내 생일인데 어제 응급실 다녀와서 피곤한 신랑도 나를 챙겨줄 여력이 안되고 늦게 자고 있는 아이들의 컨디션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한 아침 일과가 되었다. 신랑은 먼저 출근시키고 아이들은 천천히 일어나는 대로 상황을 보니 어제보다 나은 컨디션으로 일어나 주었다. 입술도 원래대로 가라앉았고 이상한 느낌도 안 난다고 해서 한숨을 돌리고는 친정 엄마라도 모시고 외식하려고 했더니 바람은 차고 엄마는 기침 중이셔서 그 핑계로 오늘은 그냥 패스하기로 꼭 생일이 날이 아니니 다 낫고 보자고 말했다. 막내가 알레르기로 어제 난리였던 터라 외식하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엄마가 걱정하실 테니 그건 따로 말하지 않았다. 외식을 못하게 되었으나 나 먹을 미역국은 끓이기 귀찮아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해 먹자 싶어 어묵탕을 끓여 먹었다.


그래 뭐 생일이라고 별일인가. 이벤트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아이의 병원이벤트를 경험하다 보니 그저 아무 일 없이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 먹고 지들끼리 투닥거리고 다투고 그거면 매일매일이 감사한 일상임을 다시금 느꼈다. 늦게 생각났는지 신랑이 오늘 저녁에 외식이나 할까?라고 문자를 주었지만 같은 이유로 오늘은 그냥 집에서 먹자고 했다.

아이들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 싶게 다시금 지들끼리 재미있게 놀고 다투고 배고프다며 나를 부른다. 그래 이거면 엄청난 생일선물이다.

잠시나마 병원에서 보내야 되는 일상을 보내시는 분들 모두 힘내시라고 마음속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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