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또 하나의 무대

손끝, 숨결, 반복 가능한 울림까지— 나에게 또 하나의 무대가 있었다.

by 단음

[PART 2] 그 마음 그대로, 조금 다르게

4. 또 하나의 무대




2022년 9월 18일. 미국 산호세.

반 클라이번 위너스 콘서트가 스트리밍으로 중계됐다.

피켓팅도 필요 없고, 단돈 40달러에 안방 1열.

그야말로 호사였다.


작은 스크린이었지만,

집중력은 공연장 이상이었다.

그 유명한 ‘입틀막 커튼콜’까지 완벽했던 무대.

그날 하루, 영상 하나로도 충분히 벅찼다.



반 클라이번 위너스 콘서트, '입틀막 커튼콜'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jemma 0012'








해외 공연은 현실적으로 가기 힘든 무대다.

그래서 영상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그건 꼭, 바다 건너에서 도착한 선물 같았다.


지구 반대편 연주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국내 공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나 올콘을 꿈꾸지만,

현실은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감사한 쪽”에 가깝다.


그러니 영상 하나하나는

나에겐 ‘또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놓친 감동을 되살려주는 제2의 콘서트홀.


특히 음향이 아쉬운 자리를 몇 번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영상도,

무대처럼 마음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티켓팅 실패의 아쉬움도 조금은 옅어졌다.

(물론, 사라지진 않았다. 그럴 리가요.)








영상으로 다시 본 연주는,

무대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까지 또렷했다.


초절기교 8번 ‘사냥’에서의 장난기 어린 표정,

명동성당 신포니아에서의 가슴 떨리던 눈맞춤,

오케스트라와 나누는 미세한 호흡,

숨 막히도록 섬세한 손끝의 움직임,


무엇보다—

그는 머리카락까지 연주의 일부로 만드는 사람이다.


공연장에서는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

한 치의 누락 없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심지어, 무한 반복까지 가능하다!








공연 영상뿐만이 아니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툭툭 튀어나오는 엉뚱한 인터뷰 답변들, 크레센도, 타이니 데스크, 고전적 하루...


그런 영상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아주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쩔 뻔했나, 정말.







공연장이라고 언제나 더 깊은 감동이 보장되지 않았고, 영상에는 영상만의 특별함이 분명히 있었다.


손끝을 보고, 표정을 읽고,

마음이 갈 때마다 다시 꺼내 들을 수 있다는 것.


이 감동을 더 정교하게,

더 온전히 듣고 싶어졌다.


결국, 영상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감동을 다시 살아가게 해주는 또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좋은 스피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KEF, 제네바, 다인오디오...


정말... 싸다 싸...

10년만 모으면 살 수 있으려나.


뭐, 음악은 도망가지 않으니까.

(그러니, 오늘은 이 영상 한 번만 더...)




꼭 보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상
F Liszt Mephisto Waltz No 1,S 514 Yunchan Lim
출처: 유튜브 채널 'miran7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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