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평가에 다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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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1년이 지나고 일하던 베이커리,
끊어질 듯 붙어있는 발목 두 덩어리와
칼날에 박혀있는 어깨와의 싸움이
매일같이 끊이지 않았을 때였다
몸으로 하는 업이다 보니
상사에게 동료에게 어쩔 수 없이 말해야만 했던
‘척추수술 했는데요’들은
어느덧 조금은 불편한 상황으로 내게 돌아왔다
내가 내 얘기를 말한 적이 없는
다른 파트의 직원들이 내 아픔을 알고 있다거나,
숨겨지지 않는 아픔들이
누군가에게는 지속적으로 아픈척하는
‘꾀병’으로 보일 수 있었다는 것 등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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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지만
오전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가끔은 다른 파트 사람들과 같이 먹게 되는데,
그날은 바리스타 매니저님과 마주 앉았다
내가 식판을 내려놓자마자
나를 주제로 옆자리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얘 아픈 데가 좀 많잖아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정신도 아프고..
다 아픈 애 ㅎ
우스꽝스럽게 웃으며 한 얘기였지만
막상 주젯거리가 된 나는
그 말이 전혀 웃기지 않았으며,
밥을 씹어 삼키는 행위가 힘겨웠고
곧 울렁울렁 속이 게워질 것 같았다
이내 굳어진 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두고
자리를 정리하고 회사 밖 근처 구석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야 어찌 됐건
본인의 얄팍한 내면을 드러내고
순간의 재미를 위한 언행이었음을 안다
그 사람의 부족한 면을
굳이 내가 끌어안고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하나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물렀고
조금 더 이 아픔에 서툴렀기에
그저 가시가 오면 오는 데로 주워
내 몸 구석구석에 직접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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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형태 없이 그렇게나 무게가 있다,
말을 무게 없이 내뱉으면
공기의 형태로 둥실둥실 떠다니다
모이고, 또 모여 결국 뜨거운 증기가 된다
증기에 입는 화상은 더 독하다
더 지독하게 나를 괴롭힌다
나 또한 쉽게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조심스레 구한 양해들은
당황스럽게도 다른 사람에게서
가십거리의 형태로 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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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좋은 사람은 아니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의 그들이 그토록 미웠던 건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곁에 있는 그들이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이미 힘든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게 당연하고
익숙한 사회라지만
나의 아픔을 두고 누군가 당연히 평가한다는 게
‘나‘였어서 그랬는지
비도덕적인 행위라 판단되니 그랬는지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다 알지도 못하면서..
직접 겪어보면 그런 생각 그런 소리 못할 텐데
마음에 꽂힌 가시 맹키로
그렇게 그렇게 뾰족한 가시를
다시 마음 저편으로 툭툭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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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하루하루 나의 새로운 아픔을 발견하고
또 내면에서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렀기에
일 하는 데에 있어 꼭 전달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바로바로 내 몸 상태를 공유드리는 게 최선이었다
다만 그 말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남 얘기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
..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 세상의 얄궂은 숙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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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건너 건너 전해 들은
제 3자가 일부 말만 골라 듣고선
함부로 말하는 말들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곤 했다
계단에서, 구석 벤치에서, 풀숲에서,
그렇게 혼자 숨 죽여 울다가
누가 지나가든 말든 엉엉 울다가
엄마에게 전화 걸어 울다가
버스 창문 너머 맑은 햇살을 보며 또 울다가
아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게
그때의 내 일상이었으니,
퇴근길 집 앞에선
항상 햇살이 가득 넘치게 내리쬐는
집 앞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온기를 느꼈다
마음이 참 평온했다
마치 날 버린 것만 같던 세상이
잠시 나인줄 모르고
나를 품어주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기에,
나라고 말하지 못하고
눈 감고 숨죽여 숨죽여 울었다
알아채면 금방이라도 햇살을 거둬갈 듯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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