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섬: 지영
"단디 붙들어라."
아가, 니 뭔 생각 하노?
정신을 붙들라고..."
언제부터인가? 산 너머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르는 소리, 바람의 살을 가르고 달리는 매의 가락처럼, 귀가 찢어질 듯 울린다.
아이의 고개가 시선을 잃자, 넋 놓은 치맛자락이 마구 펄럭인다.
어매는 금세 비를 토할 듯 까매진 하늘이 무서워, 위태롭게 깍지 낀 손을 모아 삼신할매를 부른다.
"저거, 굿이라도 해야 되잖니껴?"
"냅둬, 바람이 들어서 그렇제."
어매도, 아배도 지영의 먼 산을 처음엔 그저 어린 여자 아이의 호기심으로 넘겼다. 하지만, 밥 숟가락을 쥔 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하늘에 악을 쓰는 지영을 볼때면 '정신 줄 놓은 년' 이라며 혀를 찼다.
날은 다시 흐르고 정적은 파도 소리보다 컸다.
지영은 어찌할 줄 몰랐다. 가슴속 똬리 튼 불씨가 심지를 타고 번져가고 있었다. 몸은 말라가고 , 눈은 초점을 잃었다.
동네 의원에서 화병이라며 약을 지어 몇 해를 먹고, 어매 손에 끌려간 산신당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으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자신의 눈이, 걸음이 자꾸만 바다 너머로 향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마치 용신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밀려오는 쓸물에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뛰어 들길, 수십 번.
아배는 지영의 손과 발에 끈을 묶어 문고리에 걸었다. 바람이 불면 문은 '끄윽 끄윽 '소리를 내며 지영의 몸을 앞으로, 옆으로 흔들었다.
그럴 때면 지영은 아득한 꿈을 꾸었다. 어딘 가로 걸어가는 , 억새를 헤치고 , 해를 따라,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떠도는 자신의 영혼이 보였다.
지영도 자신이 미쳐 간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 이 가슴속 열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파도도 식히지 못하고 , 바람도 잠재우지 못하는 이 뜨거움을...
'어매, 아배... 나는 그리 살고 싶지 않소.
혼인을 하고, 애를 낳고... 나는 , 그리 살 자신이 없소.
저 산이, 저 바다가... 내 가슴속 바람이 날 냅두질 않소."
지영의 이브
이 섬에서는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았다.
아내,엄마라는 이름 외에, 지영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영은 끊임없이, 바람소리로, 때로는 파도소리로 '왜?'를 외쳤지만,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몇 해가 흘렀다.
지영은 해풍을 마주하고 부른 배를 손으로 감싼 채, 절벽 끝에 서 있었다. 갈망은 바람 사이로 흩어졌고 , 이브의 섬은 고요히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모든 풍랑을 잠재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