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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reme Mar 31. 2024

프롤로그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 삶의 절대적인 목표로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된 것이.


아마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고  또 자주였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아직 혼자서는 속옷 한 장도 빨아 입지 못하던 때부터 엄마의 순간순간을 침묵 속에 지켜보면서 속으로는 나름 굳게 마음에 새기곤 했던 생각,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윽박을 지르며 엎드린 자세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주워 들면서 뒤따라오는  엄마를 보면서 저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사람을 피 말리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둔하고 지친 남편의 말 한마디에 마른하늘의 천둥같이 갑작스럽게 비난 폭탄을 쏟아부으며 호비백산하게 만드는 엄마에게 쪼그라드는 아빠를 보면서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알아채지도 못하고 헤아리려고 하지도 않는 무신경하고 냉정한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하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되면 듣는 사람 기분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거침없이 멸시의 말을 내뱉어버리는 엄마옆에서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면서 저렇게 교양 없는 무식쟁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학교에서부터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구겨지지 않게 신경 쓰면서 들고 달려온 그림을 내밀며 한껏 기대를 품은 딸을 뒤돌아보지도 않고 밥이나 먹으라며 무시해 버리고, 손을 놓자마자 급하게 바람을 뿜어내며 압력을 줄이기 바쁜 풍선처럼 미리부터 쌓아놓은 성질이 사그라질 때까지 불을 뿜어버리는 엄마 앞에서 붉어지던 눈시울과 함께 무너지던 마음의 바스락 거림을 느끼면서 저렇게 나쁜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같은 부부싸움에도 그저 매번 똑같은 원망의 말만 반복하며 싸우고 가슴에 묻어버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관계와 삶을 방치하는 그런 나태한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대감과 분노, 슬픔과 불안으로 얼룩진 나의 어린 시절부터 내내 나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절대 엄마처럼 삶을 살지 않는 것이었다.

그건 반드시 불행한 삶을 만들고야 마는 '엄마의 모든 것들'이었다. 


그랬다. 나는 엄마의 삶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엄마가 어린 나와 동생의 뒤통수 위로 날씨예보처럼 던져버린 이런 탓 저런 탓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은 다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아빠가 힘들게 해도, 아무리 돈이 부족해서 고달프다고 해도, 두 딸을 키우는 주부의 삶이 특별한 낙이 없다고 해도... 그 속에서 괴로움의 비명을 지르는 악마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엄마의 탓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엄마는 더 이해심이 많고 더 너그러우며 더 용감했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내가 더 이해하고 더 너그러우며 더 용감한 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어른이고 보호자이기 때문에 따뜻하고 지혜롭게 역할을 잘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고, 나는 어린 자식으로서 그것들을 누리며 자랄 당위가 있었다. 

삶이 무엇인지 티끌만큼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에너지덩어리일 뿐이었던 그때, 나에게 그것은 상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공부했고,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일을 했으며,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연인을 고르고 결혼을 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에는 더 많이 더 치열하게 마음속에 떠올리며 노력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나만은 내 딸을 지키겠다고 마치 마지막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비장한 사명감으로 잔뜩 독이 올랐었다.

나중에야 '다세대 전수과정', 즉 가족 내 대물림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을 끊고자 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흔들리고 길을 잃을 때마다 떠올렸다.

계속 떠올렸다. 


'무엇이 중요한가..'


그걸 떠올리지 않고는 나는 엄마와 똑같이 살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엄마처럼 화가 날 때, 엄마가 했던 말이 똑같이 나올 때, 엄마처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볼 때...


그렇게 나는 전사가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나'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선 전사.

나와 싸우는 전사이자 내 정신 속 엄마의 유령과 싸우는 전사. 

그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나를 다시 구원하는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감히 희망해 보았다.


엄마처럼 살지 않는 것이 잘 살고 싶은 내가 넘어야 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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