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한다
2021년 11월 29일 새벽 2시. 한 라디오 프로에서 5,18 관련 영화의 한 장면이 들린다. 얼마 전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온 사람이 최소한의 도리를 하려고 왔다는 인터뷰를 보고 라디오 DJ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희생자들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안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하는가?” 그날 그 라디오 방송은 죽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그가 행한 짓을 잊지 않으려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전두환의 죽음을 대하는 MBC 라디오 “FM 영화 음악”의 방송 내용이었습니다. MBC 라디오의 영화 음악은 거의 제 인생을 관통하는 오래된 라디오 방송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들은 것은 확실한데, 중학생 때도 들었을지 모르니 참 오랜 시간 저의 친구였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겠죠. 영화음악과 영화 정보를 얻기에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음악은 세상의 문제에 눈을 감고 영화만 이야기하는 방송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 속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한 방송이었습니다. 영화라는 환상의 세계가 주제이지만 결코 환상의 세계로 도망가지 않았죠.
지금 쓰는 이 글을 아무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모순적으로 글의 내용을 자체 검열하게 됩니다. 아무도 안 보는데 왜 글을 가려 쓰게 될까요? 그만큼 공개된 글에 대한 부담은 적지 않습니다. 하물며 저도 그런데 방송은 엄청난 부담일 겁니다. 특히 지금의 세상은 SNS로 여론이 움직이고 양극단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대입니다. 이런 인터넷 여론 전쟁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것은 방송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게다가 영화 음악 라디오 프로는 쉽게 그 논란을 피해 갈 수 있는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FM 영화 음악은 피하지 않고 할 말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유튜브의 개인 채널보다도 못한 방송들이 즐비합니다. 그중에 MBC는 제가 가장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지상파 방송국입니다.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방송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FM 영화 음악이 MBC에 있는 한 저는 응원할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기억하는 MBC 영화 음악 라디오 DJ들
조일수
정은임
배유정
이주연
김세윤
주파수 숫자를 맞춰서 라디오를 듣던 시대부터 스마트 폰 앱으로 듣는 라디오가 되기까지 세월은 많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 음악 라디오 방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결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방대하고도 전문적인 정보를 얻는 것은 기본이고, 방송을 전하는 그들의 의견을 좋아했다는 겁니다.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널리즘이란 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대중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려는 고민에서 나온 그들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좋은 의견들을 자주 접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