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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없는 심판

결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

by 그림한장이야기
P20210423_160514368_895ADE76-ED1E-45C8-8235-0FE1B681C7ED.JPG 테니스 선수의 역동적인 모습 (iPad 7, Adobe Fresco)


감정 없는 심판


2021년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는 스포츠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전환점이 되었다.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한 심판의 판정을 기계에게 맡긴 메이저 대회였다. 테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판정은 공이 라인 안에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여부이다. 예전에도 판정 시비가 있으면 ”호크아이”라는 시스템으로 정확한 판별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선심이 없어지고 모든 콜을 기계가 담당하게 되었다. 높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주심이 있지만 주심이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기계가 심판을 대체한 것이다.


테니스는 비교적 간단하고 명확한 판정이 가능한 스포츠이다. 공이 라인 안에 들어왔는지만 판별하면 심판의 역할은 90% 정도 완수하는 셈이다. 심판의 역할이 복잡하고 할 일이 많은 다른 스포츠에서도 기계 심판의 도입은 빨라질 것이다. 적어도 인간의 감각으로 정확성을 담보하기 힘든 판결은 기계로 대체될 것이 뻔하다.


야구 중계방송을 보면 스트라이크 존이 나오고 실시간으로 투수의 투구가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판별이 가능하다. 인간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의외로 많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방송을 보며 확인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수많은 시청자가 심판의 판결이 기계보다 부정확하다는 것을 목격했는데 기계 판정이 전격적으로 도입이 되지 않는 것일까?”


기계 심판이 적극적으로 도입이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인간 심판들이 직장을 잃을 것이고, 심판자의 위치에 기계가 오르는 것을 사람들은 불편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미”가 없어진다며 모호한 감정적 기준을 내세울 것이다. ”인간미”란 무엇인가? 그 인간미라는 것에는 아주 주관적이고 의외성으로 가득 찬 인간 세계의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스포츠를 보며 가장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것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역전의 순간이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일어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비교적 확률이 높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심판을 보기 때문이다. 종종 심판의 판결이 잘못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말한다. “저것 봐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이 도와준다니까!”


우리 생활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사회생활, 특히 회사생활에서는 나를 심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심판들의 판결에 따라 나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판결이 꽤 부정확하다는 것을 안다. 같은 결과를 만들어도 왜 내가 아닌 저 사람이 승진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심판의 입장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결과는 안 좋지만.. 그래도 박 대리는 노력했잖아.. 내 생일에 선물도 하고..”


세상이 디지털로 변한다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디지털 시대는 데이터의 시대이다. 한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데이터는 대부분 결과들이다. 그래서 재택근무가 생각보다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일하면서 잠을 자던지, 놀던지.. 회사 업무에 큰 영향이 없는 이유는 결국 결과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바라는 것은 좋은 결과뿐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인간 심판들이 사라지면 인간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회사에서 결과가 아닌 애매모호한 과정의 순간까지 고려를 해야 훈훈한 인간미가 살아나는 것일까?


지나치게 과정에 매몰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요소가 평가에 끼어든다. 실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호감을 사는 외모나 성격 같은 업무와 상관없는 주관적인 취향이 들어가게 된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비합리적인 기준이 대한민국의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미 알 것이다. 나와 종교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며, 정치적 성향도 다르고 외모도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이 있다. 심지어 정규 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결과물이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인간상과 경쟁해서 같은 결과를 만든다면 다른 평가를 내릴 이유가 조금도 없다.


우리는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한다. 실력만 있다면 역전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며 스포츠를 관람한다. 하지만 필요한 조건이 있다. 최대한 공정하고 정확한 심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전의 성과는 점수라는 결과만이 좌우할 수 있다. 기계가 심판을 보면 유동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적어져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기에 범하기 쉬운 편견과 불안정성 등을 극복하고, 진짜 노력해서 채득 한 실력과 결과에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더 인간미가 있는 모습이 아닐까?


언제부터 성공하려면 실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좋은 학벌과 인맥, 그리고 금수저까지 물어야 한다. 결과는 같아도 살아온 과정이 달라서 심판의 결과가 달라진다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에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100시간을 노력해서 나온 나의 결과가 어느 누군가는 1시간을 노력해 나온 결과와 같다면, 나의 노력의 과정을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가산점을 받기를 희망할 것이다. ”노력”이란 나 자신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이 나의 결과를 알아주지 않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남이 나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결과를 격하게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회 없다”는 것은 남보다 많이 노력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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