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2022년에 이곳에다가 저의 유서를 작성했었습니다. "즐거운 유서 쓰기"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왜 유서를 쓰는지, 유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링크를 눌러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때 유서를 쓰고 나서 이 유서를 매년 업데이트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지금 2023년 즐거운 유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2022년 유서 ver 1.0에서 달라진 것이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유서라고 생각하는 형식이 너무 꽉 막힌 고정관념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너무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것일까요? 유서하면 꼳 재산 분할이란 공식이 바로 나옵니다. 저의 재산에 대한 것은 지금도, 10년 뒤도, 영원히 바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매년 유서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저는 매년 유서를 쓰고 싶은데 말이죠. 그래서 제 마음대로 유서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적 효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다시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최고의 선물이 현금인 것처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유산은 재산 분할일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좀 미안한 감도 있네요. 최고의 유산은 아니더라도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어 넣으려고 합니다. (유서에서는 반말을 사용합니다.)
(2023년 작성) "과정은 실력이고 결과는 운이다." 2023년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 한 문장이다. 당신들의 영원한 숙제 한 가지를 해결해 주겠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까? 잘하는 것을 해야 할까? 결과가 운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결과 즉 성공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실력의 영역인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에 다다르지 못하고 과정만 헤매다가 죽을 운명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은 반드시 과정이 즐겁기 마련이다. 좋아하지 않은데 잘하는 일은 결과만 따지고 과정은 관심 밖이다. 과정이 즐거운 일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남는 게 있다.
(2022년 작성)
유산
나의 모든 유산은 아내가 살아있을 경우 모두 아내에게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다면 사회에 환원한다.
장례절차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으니 장례식을 할 필요가 없다. 돈을 아껴라. 장례비용 너무 비싸다. 단,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의 장례식을 치러야지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라. 난 어차피 죽었다. 혹시라도 수의나 관, 장례용품 등의 가격대를 정할 때 망설여진다면 제일 싼 것으로 하라. 걱정 마라 귀신이 되어서 왜 싼 걸로 했냐며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바람은 장례식이 없는 것이다. 내 시신의 남은 부분이 의학적으로 유용하다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 후 남은 시신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장 싼 방법으로 처리하길 바란다.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고 내 몸은 죽어서 아무것도 못 느낀다.
지적, 디지털 재산
내가 남긴 모든 지적, 디지털 유산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아내에게 모두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거나,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주체가 불분명하게 된다면 모두 무료로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를 밝힐 필요도 없다.
유서가 산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저뿐일까요? 제 유서인데 뭐 어떻습니까? 내일 제가 죽는다면 희한한 유서가 탄생하는 것뿐이지요. 2024년에는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다시 재산 분할 내용만 남길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에 몸이 좀 아팠습니다. 죽을 가능성은 1% 정도였을까요? (어떤 질병을 걸려도 죽을 확률이 있습니다.) 각종 상상을 하기 좋아하는 저는 뜬금없이 이곳에 적었던 유서가 생각나면서 뭔가 든든한 마음이 생기더군요. 아무도 죽음을 대비할 수 없습니다. 유서를 적어보는 이 행위가 쓸데없는 짓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태도를 1년에 한 번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