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산은 무엇일까?
저는 매년 유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2022년에 브런치에 저의 유서를 처음 썼습니다. (첫 유서 링크) 그 후 1년에 한 번씩 저의 유서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진지하게 유서를 썼는데 갈수록 콩트처럼 변해가네요. (새롭게 업데이트할 유서 내용이 매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 유서를 쓸 때 가장 큰 목적은 내 장례식에 돈 쓰지 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아직까지 유효한 핵심 니용입니다. 그다음 중요한 것들 중에 "유산"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저의 유산에 대한 내용은 참 간단하죠.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재산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돈 말고 나의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림도 안 그리고 글도 안 썼다면 내가 남길 유산은 정말 보잘것없었겠구나!" 위의 사진들은 그 유산들 중 일부입니다.
물론 저의 유산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실망을 하겠지만 말이죠.
상상을 해 봅니다. 제가 죽고 유산 상속자가 저의 유품들을 정리합니다. 그러다가 저의 그림들을 발견하고 신기한 듯 한 장 한 장 살펴봅니다. "쓸데없는 그림들을 많이도 그렸네..."라며 그림들을 바라보겠죠. 어쩌면 그림들을 보면 볼수록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질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유산을 남긴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또 모르죠. 저의 그림들의 가치가 올라서 엄청난 부를 상속자에게 선사할 지도요. (유서 쓰는 게 재미있는 이유가 이런 공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유서 ver 2.1 - 2024년 작성)
내가 치매에 걸릴 경우 죄책 감 없이 적당한 요양원에 보내라.
나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면 치매 관련 임상실험에 지원하기를 희망한다.
(2024년 현재 기준, 치매에 대한 명확한 나의 의견이 확립되지 않았다. 위의 내용은 변경될 수 있다.)
(유서 ver 2.0 - 2023년 작성)
"과정은 실력이고 결과는 운이다." 2023년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 한 문장이다. 당신들의 영원한 숙제 한 가지를 해결해 주겠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까? 잘하는 것을 해야 할까? 결과가 운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결과 즉 성공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실력의 영역인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에 다다르지 못하고 과정만 헤매다가 죽을 운명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은 반드시 과정이 즐겁기 마련이다. 좋아하지 않은데 잘하는 일은 결과만 따지고 과정은 관심 밖이다. 과정이 즐거운 일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남는 게 있다.
(유서 ver 1.0 - 2022년 작성)
유산
나의 모든 유산은 아내가 살아있을 경우 모두 아내에게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다면 사회에 환원한다.
장례절차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으니 장례식을 할 필요가 없다. 돈을 아껴라. 장례비용 너무 비싸다. 단,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의 장례식을 치러야지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라. 난 어차피 죽었다. 혹시라도 수의나 관, 장례용품 등의 가격대를 정할 때 망설여진다면 제일 싼 것으로 하라. 걱정 마라 귀신이 되어서 왜 싼 걸로 했냐며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바람은 장례식이 없는 것이다. 내 시신의 남은 부분이 의학적으로 유용하다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 후 남은 시신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장 싼 방법으로 처리하길 바란다.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고 내 몸은 죽어서 아무것도 못 느낀다.
지적, 디지털 재산
내가 남긴 모든 지적, 디지털 유산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아내에게 모두 귀속된다. 만약 아내가 세상에 없거나,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주체가 불분명하게 된다면 모두 무료로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를 밝힐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