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 낳은 어둠, 그 속에서 찾은 길

놓아줌과 새로운 시작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Q 힘든 터널이 눈 앞에 있다면 여러분은 멈추고 머무를 건가요? 아니면 맞서 걸어가실 건가요?


강아지를 하늘로 보내고 괴로운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몰려와서 나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버티면 보상이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은 희미했고 낙담만 깊어졌다.


어둠 속 내면의 늪에 빠지면 사람은 갈림길에 선다. 빠져나올 수 있느냐, 잠식되느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시야가 좁아지고 위축됐다. 조금만 힘을 내서 올라가면 빛이 보이는 탈출구가 있는데도 무기력에 휩싸여 저항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웅크리고 울기만 할 뿐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외로웠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지만 상처와 슬픔은 늘 다양한 모습을 하고 나를 공격했다. 도움의 손길이 닿아도 내 깊은 내면까지 닿아서 치유가 되지 않기를 알기에 그 손길조차 아프게 느껴졌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관찰자가 된다.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둘러싼 관계를 냉정하게 바라 보았다. 나와 너의 연결고리는 없고 '나는 철저하게 타인으로 널 바라보고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거야.'라고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한껏 경계를 한다. 결국 내 곁에 남는 이는 내 편이 되는거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인물과도 연결되었다.


내가 깊은 구덩이를 파고 땅굴에서 지내며 일상 생활도 못하고 회복이 불가능할 때 나와 같이 슬퍼하며 안개 자욱한 동굴에서 나를 억지로 꺼내려 하지 않고 어둠 속에 내려와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옆에 앉아 나를 기다려주었던 가족들이 있었다.


슬픔에 내 몸이 점점 부식되고 나라는 존재를 잃기 직전에 친구 J는 나를 위한 위로의 여행을 준비해서 그 하루만큼은 강아지 생각을 잊게 해주었다. 넘실대는 강물 위 윤슬에 강아지의 모습을 흩뿌리며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도와주었다.


친구 H는 푹신한 인형을 선물하면서 나의 공허함과 허전함을 채워주었다. 높은 텐션으로 끊임없이 유쾌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내 마음을 다독였다. 많은 위로를 받으니 내 영혼의 상처도 조금씩 낫게 되었다.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다른 지인들도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그들이 보내준 위로를 한아름 안고 용기를 등에 가득 싣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햇빛을 만끽하며 어둠에서 나오자 가족과 친구들이 내 손을 붙잡아 격려해주었다. 이 깊은 구덩이는 내 마음의 함정이고 심연이고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는 싱크홀이었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내면의 어둠을 자주 만들텐데 내가 잘 이겨 낼 수 있을까? 그 때 느낀 건 나 스스로 나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단한 마음, 내면말이다.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수없이 받아왔다. 상처는 피할 수 없다. 상처를 그냥 내버려둬서 내 몸에 피가 흐르게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미연에 방지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것인지, 상처를 받더라도 내가 내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는지 그건 온전히 내 선택의 몫이다. 나는 상처받더라도 올곧게 서 있고 치유하며 살아갈 것이다. 당장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안개가 걷히면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날이 올 것이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였다. 혼자 죽기는 싫지만 평소에 마이웨이, 독고다이를 고집했지만 내가 밖에 나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누군가의 힘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공동체의 소중함을 그제야 깨달았다.


구덩이를 빠져 나오니 가족과 친구들 어깨너머로 또 하나의 긴 어두운 터널이 보였다. 삭막한 입구는 나를 삼킬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래 저 터널은 내가 오래 견뎌야 할 것들이구나."


터널 앞에서 선택은 자유다.

가도 되고 멈춰도 된다. 지나야 성장할 수 있지만 머물러도 괜찮다. 억지로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 욕심이 나면 도전하는거고 욕심없이 유유자적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으면 터널을 지나지 않아도 된다. 누구의 눈치 볼 것도 없이 누군가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내 마음이 평온한 길을 고르면 된다.


나는 터널을 지나기로 결심했다. 회피 할 수도 묻어둘 수도 있었지만 맞서 직면하기로 했다. 그 과정은 매우 괴롭고 겁이 났지만 살아있으면 저 터널을 지날 수 있다.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내가 얼만큼 자라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놓치면 큰일날까봐 붙잡았던 강아지의 모습과 그동안 간직한 번뇌와 상처들을 하나 둘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내가 빠져나온 구덩이 속에 강아지와의 추억을 묻으며 그 위를 행복과 아름다움, 찬란함이라는 이름으로 입구를 덮었다.


이것은 '완전히 아이를 잊어버리겠다, 눈 앞에 억지로 사라지게 해 그리워하지 않고 슬픔을 차단하자.'에 대한 행위가 아니다. 아름답게 추억을 꺼내서 언제든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한 때는 춥고 어둡고 경계대상이 된 구덩이를 따뜻한 온실로 바꾼 것이다.


이제 그리움은 억누르지 않는다.

넘쳐 흐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흘러보내서 마음껏 떠난 이를 그리워할거고

빈자리에 흙을 덮고 양분을 주고 꽃을 피울 것이다.

상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지만 추억과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가며 다시 살아가면 된다. 어쩐지 나를 짓누르던 부정적 껍데기 하나가 부숴진 듯하다.


그리고 나는 B체육관 등록이 만료됨과 동시에 단체활동 사진과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 지레 겁먹고 무서워해서 보류시켰던 A체육관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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