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챔피언이 되는 장면이 잠깐 스쳐 지나갔어요.
Q 링 위에서의 첫 공격 스파링은 어땠어요? 단순히 일방적으로 때리는거 아닌가요?
A 일방적으로 때리는 단순한 스파링이 아니라 복싱을 통해 힘의 의미를 처음으로 느낄 수 있고 힘을 쓰는 것도 배우고 상대에 대한 존중도 배울 수 있어요.
펑,펑!
아자아자 화이팅!
퍼억,퍽
서로 파이팅하는 외침과 샌드백 치는 소리, 글러브끼리 맞닿는 소리가 들렸다. 강력한 원투에 샌드백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걸 쓱,스윽 피해가며 스텝을 밟으며 다시 원투를 치는 관원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활기차고 상기된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바닥에는 사람들의 땀방울이 흩어져 있었고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감탄했다.
'우와...'
하며 체육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옆에 거울을 보니 새로운 문화를 만나 어리둥절해하며 벙찐 복싱 뉴비가 서있었다.
링 위에는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서로 주먹을 내지르며 스파링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링 아래에서는 체육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관원들끼리 기술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기존에 배우지 않았던 콤비네이션을 배우니 복싱에 대한 열정이 또 다시 불타올랐다. 원투와 스텝이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 글러브를 끼고 수업을 참여했다. 여러 사람들과 글러브를 부딪히며 주먹을 내보니 활기가 돌았다.
심장이 뛰었다.
쿵쿵쿵쿵
원 혹은 잽에 왼손을 뻗고 투에 오른손을 뻗자.
원투 원투, 잽 원투, 잽잽 투, 잽잽잽 투
원투를 이용해 무작위로 만들어서 주먹을 활용할 수 있는게 매력이었다.
어릴 때 오락실에서 즐겨했던 철권과 스트리트 파이터, 버추얼 파이터 등 격투 게임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철권에서 복싱 캐릭터인 스티브가 있었는데 수업하면서 스티브 캐릭터에 빙의해 나도 주먹을 뻗어 보았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났을까? 관장님이 내게 스파링을 제안하셨다. 아, 물론 내가 공격만 하는 스파링이었다.
'하긴 이제 걸음마도 막 하는 초보에게 내가 그려온 멋진 스파링 그림은 한참 뒤겠지.'
링 앞에 서니 뭔가 위압감이 느껴졌다. 링 줄을 걷어내고 푹신하면서 딱딱한 링 위를 올라서니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짐과 동시에 내가 챔피언이 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짧은 순간에 김칫국을 마시다니 나도 참..
복싱의 링은 정사각형 형태에 총 4개의 코너가 있다.
홍코너, 청코너, 하얀색코너2개 이렇게 나뉘어지는데 홍코너는 주최 측 선수, 경력이 있는 선수
청코너는 도전자, 원정 선수, 경력이 홍코너에 비해 낮은 선수이다.
하얀색코너는 중립 코너여서 경기 도중 심판이 선수를 분리할 때 가는 곳이다.
나는 청코너, 상대분은 홍코너에 서서 스파링 준비를 했다.
'삐-익 땡!'
종이 울리자 상대분과 글러브를 맞대고 공격 스파링을 해보았다.
2분 4라운드 동안 경력이 있는 남성분이 방어를 하고 내가 신명나게 공격하는 스파링이었는데 그동안 배운걸 모조리 쓰기로 결심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보니 힘조절이라는 생각도 안하고 그냥 신명나게 줘패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일방적으로 공격한다는게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맞아? 이게 맞나?'
'이렇게 때리는거야? 일방적으로?'
하면서 공격을 망설이자 상대분이 괜찮다면서 이대로 해도 된다고 하고 주변에서 세컨을 봐주시는 지도자분들이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방어를 하는 사람도 실력이 느는거라고 했다. 맞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는다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여 있는 힘껏 주먹을 냈다.
나의 원투가 얼굴끝까지 올린 가드에 부딪혔고 바디잽(명치나 복부에 치는 잽)을 치라고 했지만 바디잽이 뭔지 모르는 나는 주먹을 되는대로 휘둘러 옆구리를 한 대 쳤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코너로 몰아서 공격하기도 했다. 글러브 가죽이 맞붙는 소리, 퍽퍽이라는 의성어가 눈 앞에 글씨로 보이는 것처럼 정말 알차게 공격했다.
내가 살면서 10분동안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본 적이 있나?
아니, 당연히 없다.
단단히 단련된 누군가를 때리는 것도 힘들었고 이상하게 지치지는 않았지만 처음 느껴보는 타격감에 개운함을 느꼈다. 손 맛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격려를 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내 자신감을 올려주었다. 칭찬은 정말 중요한 거 같다. 첫 스파링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매일 체육관을 나가면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스트레칭은 꼭 하고 기본기 연습을 수업 전에 3분 3라운드 해보기로 했다.
복싱의 기본 스탠스는 오소독스(오른손잡이), 사우스포(왼손잡이)로 나뉜다. 나는 오른손잡이여서 오소독스이고 대각선으로 왼발이 앞으로 오른발이 뒤로 서있는 자세이다. 간혹 스위치를 사용하며 오소독스, 사우스포 자세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다.
오소독스의 원투의 원은 왼발과 왼손을 함께 앞으로 뻗고 투는 오른손으로 강한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된다.
이 때 하체의 중심도 중요해서 복싱은 발로 하는거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투를 날릴 때는 오른발을 지면에 꽂아두고 앞으로 돌리고 골반을 나가는 방향과 함께 뻗어 하체의 힘을 실어 투를 날려야 한다.
사우스포는 이와 반대로 하면 된다. 오른손이 잽이 되는거고 왼손이 투가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원투를 익히기 위해서 나는 체육관에 가서 거울을 보고 원투를 연습했다. 주먹 뻗는 게 어색하고 내 자세도 휘청거리고 엉성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거니까 해야지. 세달 째가 되자 점점 복싱에 묘미를 알게 되고 그만둘 수가 없겠구나 하고 예전의 나와 조금 달라진 활기찬 모습으로 눈을 반짝이며 체육관을 출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