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 모인 꼬맹이들에게 "얘들아, 너희 뭐 하니?"

by 정숙진

"쟤네들, 저기에서 뭐 하는 거지?"


딜런이랑 오웬, 아들까지 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채 열심히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다른 급우들보다 늘 일찌감치 등교하는 편이라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어줄 때까지 이렇게 모여 놀곤 하던 삼총사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골똘히 관찰하는 모습은 늘 사랑스럽다. 내 눈에 내 자식 예쁜 건 당연하지만,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기네들끼리 뭐라 심각하게 토론을 벌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낙심하는 듯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싶었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지나쳐 장난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혹은 정말 위험한 상황을 어른 보다 먼저 감지한 건 아닌가 싶어서다.



"얘들아, 너희 뭐 하니?"


어른인 내가 나설 테니 너희들은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자세로 삼총사에게 다가섰다.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딜런이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 세 명 모두 어정쩡하게 앉은 자세 그대로라 아이들의 머리와 몸뚱이가 겹쳐 내 시야를 가렸다. 뭘 들여다보고 있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야겠다 싶어 나도 쪼그리고 앉았다.



"으아하... 악... 꺅...!!!"


그 순간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르고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꼬맹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놀랍게도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뒹굴고 있었다. 흙과 자갈로 덮인 학교 앞마당이 전날 내린 비로 젖는 바람에 그 틈을 타고 근처 화단에서 빠져나온 모양이다. 비 온 뒤면 늘 펼쳐지는 풍경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런 날 학교에 갈 때마다 나는 되도록 지렁이가 출몰하는 흙길은 피해서 걷곤 했다.


아까 딜런이 내게 했던 말은 아마 Worm이었을지 모르겠다. 지렁이라는 뜻의 조금 더 긴 단어 Earthworm을 쓰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같은 영어라도 어린아이들이 하는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영어 원어민이 되기에는 아직 발성 구조가 성숙하지 않고 어휘도 어설프니. 나 자신조차,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할 때마다 '가이가이보'라 하지 않았던가. 시합 도중 반칙을 하는 친구에게 '너 그러면 무료야!'라고 외쳤던 말은 또 어떤가.


등교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날 무렵 땅이 거의 다 말라버리자 지렁이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른 아침부터 따갑게 내리쬐는 해로 인해 말라붙어가는 땅바닥에서 괴로움으로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다가 지렁이 구출 작전을 모의하게 되었으리라.



"얘들아 너희들끼리 잘 해낼 수 있지? 아줌마가 바빠서 말이야!"


이렇게 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내게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지렁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가여운 생명체로 보이는 게다. 외모가 혐오스럽다 뿐이지 우리가 사는 환경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 아닌가. 무엇보다, 학교에서 나비의 알이 성충이 될 때까지 성장 과정을 관찰하고 자기 손바닥만 한 브라질산 바퀴벌레를 직접 만져보던 아이들이다.


불쌍한 지렁이를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는 염원으로 가득한 아이들 앞에서 어른인 내가 징그럽다고 줄행랑을 칠 수는 없기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도저히 맨손으로 지렁이를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아 나뭇잎이라도 활용해 볼까 주변으로 눈길을 돌렸더니 이 날따라 학교 앞마당은 말끔히 정리되어 낙엽 하나 안 보이고 화단 주변마저 휑했다.



"빨리 구해줘야 해요."


자기들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어 크게 실망하던 중 구세주가 나타난 듯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눈을 보며 다급해진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뒤졌다. 어디서 받은 건지 모르는 명함 한 장이 나오길래 급한 김에 이거라도 써야겠다 싶었다. 명함을 바닥에 내려놓고 지렁이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선에서 위에다 올리고는 근처 화단에 놓아줬다.


나의 어설픈 지렁이 구출 작전에 아이들이 감동해 뭐라 환호성을 지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가슴이 떨리다 못해 억세게 쿵쾅거렸던 기억뿐이다. 지렁이 공포증도 있다는데...


휴...


커버 이미지: Photo by Peter Dlh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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