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글을 새롭게 다듬어 올립니다 -
다섯 살 난 아들이 갑자기 울먹이며 말했다.
아들이 잠드는 시간에 맞춰 침대에 같이 걸터앉아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를 읽을 때다.
글자를 모르는 아들을 위해 내가 직접 어린 소녀, 할아버지, 마녀, 괴물, 악당은 물론 각종 동물까지 동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 흉내를 내고 상황에 맞게 감정도 살려가며 책을 읽어주던 시절이다. 임신했을 때부터 하던 일이라 이력이 쌓여서인지 아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그럴수록 나도 신이 나서 내용에 몰입해 가며 읽었다.
책 내용을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면,
골디락스라는 소녀가 숲 속의 오두막 집에 들어간다. 곰 가족이 사는 집인 줄도 모르고 들어간 골디락스는 식탁에 놓인 죽을 먹고, 의자에도 앉아 보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까지 한다. 그러는 사이 곰 가족이 산책에서 돌아온다.
이다.
이후 내용은 책마다 조금씩 다르다.
1) 골디락스가 놀라서 도망간다.
2) 골디락스가 곰 가족과 친구가 된다.
3) 골디락스는 소녀가 아니라 할머니다.
이렇게 다른 버전이 있다.
내가 읽어준 버전에는, 골디락스가 무시무시한 곰 가족이 사는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가 놓고 온갖 이탈 행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앗, 죽이 너무 뜨거워', '앗, 의자가 너무 딱딱해' 등 불만 가득한 소리까지 질러댔다.
책 내용 그대로 아들에게 한창 읽어주는데, 골디락스가 아빠 곰 침대에 눕고서 '앗, 침대가 너무 커'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침대가 크다고 주인공이 불평하는 말에 아들은 퍼뜩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나 보다.
어린이용 침대이기는 하나, 아들이 계속 성장해도 쓸 수 있도록 넉넉한 크기로 산 것이다.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려도 누울 수 있다고 아들이 좋아하던 침대다. 디자인도 예뻐서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의 부러움마저 사던 침대가, 까탈스러운 동화책 주인공의 말 한마디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다니.
“아들아, 아직 곰 가족이 나타나지도 않았거든. 아빠 곰이 화나서 주먹을 휘두르면 골디락스는 뼈도 못 추려. 어쩌면 산 채로 잡아 먹히거나 주거 침입죄로 경찰에 신고당할 수도 있단 말이야. 거기까지는 읽어야 이야기가 슬픈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잖아. 엄마가 무서운 곰 흉내도 낼 수 있는데, 벌써부터 울면 어떡하냐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했다가는 아들에게 트라우마로 남겠지.
한창 감정을 살려가며 책을 읽는 엄마의 노력을 중단한 채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려 하니 나의 실망도 컸다. 하지만, 성급한 어른의 판단으로 아이를 나무랄 수는 없으니, 마음속으로 섭섭함을 꾹꾹 눌러 가라앉힌 후 아들에게 침착히 말했다.
아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의 이름을 대며 말했다.
매번 사업 아이템이 바뀌는 아들의 상점놀이 고객이 되어 물품을 강매당하기도 하고, 경찰놀이를 하는 날은 각종 경범죄를 저질러 벌금 고지서를 받는 신세가 되는 아이들이다. 어떤 때는 보드게임의 놀이 동무로, 때로는 활쏘기 연습용 표적으로도 활용되었다. 날마다 다른 놀잇감 도구로 쓰이지만 밤이 되면 아들의 침대에 다 같이 모여 자는 친구들이었다.
내가 몇 초만에 급조해 낸 해명임에도 아들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표정이 되었고 그제야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 아들이 쓰던 수경을 물려받은 친구 '곰태환'
내가 낳고 키웠음에도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어른인 내가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주다가, 읽는 행위 자체에 심취해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다 흉내 내고 본문에 적힌 내용을 모두 읽어주다 보면 아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을 때가 있다. 모든 동화책이 아이를 웃게 만들거나 통쾌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에.
아이와 함께 읽다가 나를 멈칫하게 만든 책은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외에도 더 있었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의 원작자인 로알드 달의 작품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로알드 달의 책을 읽기 시작하기에, 도서관에서 작가의 책을 잔뜩 빌려와 내가 먼저 읽고 아들의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이미 직접 책을 읽는 시기였으므로, 아들 혼자 소리 내어 읽게 한 다음 느낀 점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저자의 여러 작품 중 위 책의 차례가 되면서 또 멈칫했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고 이모 집에 살게 되는 주인공 이야기가 첫 페이지에 나오는데 아들이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더 이상 못 읽겠다 버텼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사악한 이모들과 살아야 하다니 주인공이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단다.
아들은 무서운 괴물이나 마녀가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감정의 동요가 별로 없지만, 고아 얘기만 나오면 슬픔이 복받쳐 와서 힘들어하는 편이다.
라고 말해줘도, 아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결국, 아들은 로알드 달의 책을 거의 모두 비슷한 시기에 다 읽고도, 이 책만은 세월이 훨씬 지나서야 읽을 수 있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어린 시절 TV 만화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은 있지만, 정작 하이디가 왜 알프스에 갔는지,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모르는 작품이었다. 그 바람에 아들에게 읽어주던 중 내가 먼저 울음을 터뜨릴 뻔한 책이다.
한글 동화책 시리즈를 순서대로 하나씩 읽어가다가 차례가 되어 책장에서 꺼내든 책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일단 시작은 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목소리는 떨리고 그래서 계속 읽자니 난감했다. 아들도 점차 심상치 않은 이야기 전개에 태도가 조금씩 굳어지는데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 더 동요되는 듯했다. 그렇다고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두 사람의 울음바다가 펼쳐질 것이 뻔했으니.
단락이 끝날 때마다 뜸을 들이며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굳건히 먹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
감수성 예민한 아들 때문에 책 고르기가 만만치 않다 불평했는데 어른인 나도 별수 없나 보다. 아이에게 읽어줄 책은 반드시 사전 조사를 거쳐야 함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ndy Kuzma on Pexels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