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대답이 없다.
볼펜을 쥔 손으로 문제집과 연습장을 바쁘게 오가며 문제 풀이에 한창 빠져 있느라 내 말을 못 들은 듯하다. 엔진과 기기에서 들려오는 굉음도 있고 주변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귀에는 이어폰까지 끼고 있으니 더욱 힘들겠지.
결국, 팔을 몇 차례 톡톡 치고 나서야 아들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들이 공부를 좋아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긴 다른 곳도 아닌 비행기 속이지 않은가.
몇 시간씩 걸리는 장거리도 아닌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하는 비행이었다. 시험을 치러 가는 길도 아니요,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영국의 미지근한 여름 날씨만 겪은 아들에게는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살인적 더위를 온몸으로 버텨내고 온 뒤라 피곤할 만도 한데, 공부를 하고 싶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디에서건 머리만 대면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드는 아빠와 달리, 이동 중에는 편히 쉬지 못하는 엄마의 민감한 습성을 닮은 건지 아들은 비행기나 기차에서 잠을 자는 대신 무언가에 집중하는 편이다.
바쁘게 끝내야 하는 일이 있었냐고?
학원 숙제가 밀렸거나 시험이 임박해 있었냐고?
전혀 아니다.
여름 방학이었다. 일기를 쓰고 새 학기에 배울 단원을 예습하는 등 과제가 주어지는 방학, 즉 내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방학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 방학이었다. 그것도 6주나 지속되는 방학.
아니지.
졸업시험을 끝냈으니 다른 청소년 보다 한 달이나 이르게 방학을 맞이했다. 두 달 반의 자유 시간.
이런 여유로운 시기를 맞이하여 친구들은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말이다.
대학준비반 입학을 앞두고 부담을 느꼈을까?
2년 뒤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하니 부담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영국의 학생들이 대학에 지원하려면 최소 3개 과목만 공부해도 되기에 이전에 비해 더 큰 부담을 진다고는 할 수 없다.
아들은 이 최소 과목 중 하나를 더 늘려 총 4과목을 선택했지만, 바로 얼마 전 치렀던 중등학교 졸업시험에 대비해 10개 과목을 공부하던 시절에 비하면 시간표가 훨씬 단출하다. 각 과목에 쏠리는 난이도와 중요도는 중등학교에서 배우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아이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반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 지나치게 공부에 몰입하는 태도가 때로는 염려스럽기도 했다.
한 달 반이나 지속되는 시험 기간을 보냈으니 휴식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다스리는 일도 필요하지 않은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만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소년기에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즐거움도 탐색할 필요가 있고 말이다.
이런저런 내 마음속 혼란을 단순히 '그게 재미있니?'라는 말로 표현했더니 아들 또한 싱겁게 '네'라고 답했다.
당장 끝내야 하는 숙제도 아니요 부모가 시킨 일이 아님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제를 풀 정도라면 진정 공부가 재미있지 않고서는 나오지 않을 행동이다.
집에서는 학원이나 과외를 시킨 적도 없고 공부하라 강요한 적도 없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도 9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 아이였으니.
솔직히 이런 모습은, 수면 시간만 제외한다면, 남편과 나의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나의 경우, 또래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에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성장하면서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공부였기에 그 방면으로 몰입했다 할 수 있다.
가족 모두가 TV나 게임을 즐기기보다 독서, 공부를 하고 산책을 하며 여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들에게는 공부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쯤 두 부자가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인데 감감무소식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곧장 공부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고 나면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말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방으로 올라갔더니 두 부자가 한창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다 싶으면 질문을 하고 답변을 찾으려 공동으로 노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대화를 엿들어 보니 읽고 있는 책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먼저 읽고 두 사람에게 추천한 책이기에 그 정도는 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독서와 토론은, 아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아들 또래가 읽어야 할 필독서를 주로 선택하다 보니 지루하게 다가 올 만도 한데, 나와 아들이 번갈아 책을 낭독하면서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지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같이 분노하고 통쾌해하고 때로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스터리 이야기꾼이 되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렇게 두 모자가 진행하던 낭독 과제를 이 즈음 남편과 아들이 이어가고 있었다.
공부방 문을 열어 보니, 아들이 이렇게 화이트보드에 적고 있었다.
수학의 확률 문제로 기억한다. 아들은 평소 아리송한 숫자나 도형, 공식을 적어 주변 사람에게 보이고는 질문하는 일이 있었다. 이과 수학을 배우지 않은 나로서는 언젠가부터 아들이 보여주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졌고, 공대 출신인 남편조차 아들의 수학적 사고에 간혹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자신이 학창 시절 배우던 수학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부자가 수학을 주제로 대화 나누는 정도는 가능하니, 아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자연스레 토론으로 이어진 것 같다.
가만 내버려 두면 밤새도록 토론을 벌이고도 남을 태도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대학 합격이 확정되고도 아들은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슨 공부를 하냐고?
자신이 다닐 대학에서 첫 1년 동안 공부할 강의 내용을 인터넷으로 찾아 예습하는 일이다. 신입생이 공부할 내용을 입학 전부터 공부하는 셈이다. 전 세계에서 수학 분야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자신의 학과로 모이리라 예상한 아들은, 이들과의 경쟁에 뒤지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또다시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졸업 후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어떤 이유에서든 '공부가 재미있어서'라는 답으로 늘 자신의 열정을 설명하는 아들이다. 이제는 성인이 되었으니 부모가 무슨 간섭을 하겠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일이 떠오른다.
다른 행성에라도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극도의 고온건조한 날씨에 호흡조차 힘들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인장과 알로에가 가로수처럼 자랄 정도니. 한국의 찜통더위를 겪은 나조차 적응하기 힘들 정도의 뜨거운 태양 열기에 과연 제대로 휴가를 보낼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 낯설고 버거운 환경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강행군을 벌인 아들은 조깅을 하겠다며 밤외출을 했다.
공부든 운동이든 열심히 하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아들을 염려하는 부모 입장에서 잔소리를 해야만 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Oleksandr P on Pexels
끝